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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교회 목회자 칼럼
2014.11.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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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휄로쉽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저의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교회적으로 볼 때도 일의 결국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나타나 주셨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두 손 내밀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의 주관자가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3:14)고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인정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하신 일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이 한 해 동안 되는 일이 없었던 것 같고,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한 해를 보낸 것 같을지라도 지난 주일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끝내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통해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실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먼저 붙들고 나갈 때 우리의 입에는 진정한 감사 찬송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가 받은 복을 먼저 세어볼 때 비로서 우리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결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고 살아가지만,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형편이 좋아지고 좋은 일만 생겨도 우리 안에는 늘 두려움과 염려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동치 않을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자”는 히12:28의 말씀처럼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영원한 천국에 두어질 때, 우리는 비로서 이 땅의 나그네의 삶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몸이 건강하지 않을 지라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형편에 있을 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폐암으로 먼저 가신 저의 둘째 형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비록 폐암 때문에 먼저 이 땅의 삶을 마감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를 알게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감사한 일일 뿐이다.’ 그 때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또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나의 삶이 내 뜻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을 지라도 우리 모두는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지난 날의 삶의 아픔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 해서 우리 모두 한 해를 돌아보며 각자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휄로쉽을 통해,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휄로쉽은 이 땅에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후 2014년 11월 추수감사절을 즈음하여
휄로쉽 청지기 김 대 영 목사 드림.....

  • ?
    정평희 2014.11.20 16:03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일년 이었읍니다.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모든 성도들이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 하였더니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게 하여 주셨읍니다.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읍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교회를 인도하여 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또 이러한 큰 비젼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또 참고 기도하도록 격려하여 주신 목사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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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서나 행복하고 성숙한 사회와 민족이 되려면 소수의 세력이 야합하여 다수를 움직여 보려는 시도를 조용한 다수가 감지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합니다. 목적을 이루면 그만이라는 공산당이나 군국주의 소수세력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크나큰 고통을 당하던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합니다. 아놀드 토인비 같은 영국의 역사학자는 역사를 반전시킨 사람들을 가리켜 “창조적 소수”라고 지칭한 바 있지만, 위에 말한 경우들은 “파괴적 소수”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교회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끊임없이 목적달성을 위해 몸부림치는 좌파적 소수세력을 탓하지만 말고 오히려 의로운 힘, 강력한 복음의 다수세력들이 그 무력감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마침내 통일까지 이루어내도록 저들보다 더한 열정을 불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 소수세력과 맞서서 싸우거나 대항하는 물리적 방식보다는 기도의 능력을 확신하는 강력한 다수 세력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 목적으로 10년 전부터 시작된 KCC(북한자유를 위한 한인교회 연합)는 지속해서 통곡기도 운동을 이끌어 왔고 올해도 다음 수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버지니아에 있는 필그림 한인 침례교회 장소를 빌려 워싱턴 지역 통곡기도 대회를 개최하고 통일 한국과 선교 한국을 위해 뜨거운 통곡기도를 펼치게 됩니다. 걱정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크리스챤은 사실상 주님의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한 마디라도 기도하고, 한걸음이라도 걸어서 참석하고,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불쌍한 동족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강력한 복음세력이 되며 우리 민족을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오십시오! 당신도 그곳에 함께 있어야 할 거룩한 성도입니다!


                       "핍박받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통곡 기도회"

                           일 시 : 7월 16일(수요일), 오후 7시 30분
                           장 소 : 버지니아 필그림교회
                                     (4925 Twinbrook Rd, Burke, VA 22015)

                


2014.06.29 13:03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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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는 정말 바쁜 한 주를 보낸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이 바빠서가 아니라, 집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약 한 달 동안 선교보고를 위해 방문하고 머물렀던 선교사님(아프리카 탄자니아)이 선교지로 돌아가시자마자, 린치버그에서 목회하고 계시는 친구 목사님이 가족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난 주간에는 제가 속한 한국 침례교의 미주총회가 Dulles Hilton Hotel에서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었기에 또 교회 근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리게 된 행사에 나가 보지도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오후 시간 잠깐 틈을 내서 회의장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전에 한국의 같은 교회에서 함께 섬겼었는데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목사님 내외를 만났습니다. 그 동안 우즈베키스탄과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사역을 했었고,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강권 하심과 전에 선교지에서 알고 지내던 목사님의 강한 권면으로 지금은 텍사스에서 4년째 목회를 하고 있노라 했습니다. 약 20년 만에 만남이었습니다. 20년 동안 만나지도 소식도 없이 잊고 살았지만 한 두 시간 얘기하다 보니 어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 같은 기쁨과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좋았던지 그 목사님과 함께 총회에 참석했던 같은 주에 계신 목사님이 동석했고 함께 얘기하다 보니 모두 같은 나이였습니다. 그러다 모두 함께 친구 하자는 말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친구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만에 친구를 사귀게 된 것입니다. 만난 지 하루 만에..ㅎㅎ
총회가 끝나고 그분들은 모두 섬기는 지역과 교회로 돌아갔고, 또 방문했던 목사님 가족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한 주를 손님 대접으로 바쁘게 보내면서 ‘친구’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언제 만나도 즐겁습니다. 편한 존재입니다. 서로 마음이 잘 통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함께 하면 잘 될 것 같습니다. 또 친구에겐 비밀이 없습니다. 서로를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친구 사이의 의리가 목숨을 걸 만큼 진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나이의 유무를 떠나 외롭습니다. 때로는 주변에 그렇게 사랑해주고 사랑 받는 사람이 많음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고, 나를 위로해 주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외로움을 모릅니다.
그런 친구가 있으신가요? 없다면 이제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찾아보면 늘 가까이 있지만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미는 그런 시도는 어떨까요?
사실 우리는 가장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고, 지금도 내 곁에 항상 함께 하는 친구…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린 너무 많은 시간을 그분이 나를 짝사랑 하듯 그렇게 쳐다보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두웠던 내 영혼에 빛을 주시고, 마음 깊이 숨겨졌던 아픈 상처들을 치유해 주신 왕이요, 구세주요, 위로자인 가장 귀한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예수님이 먼저 자격도 조건도 되지 않는 우리에게 친구 삼자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면 예수님께서 친구라고 불러 주신다 하십니다. 친구는 친구가 하는 것을 서로 알고 함께 행동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창18:17, 사41:8, 약2:23)이 되어 그 행하실 일들을 미리 알게 되어 소돔을 위해 중보 하기도 했습니다. 참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친구가 되기를 자청하시니 말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함께 친구 하자고…
요 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2014년 6월 29일
양경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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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늘 아침마다 피곤했었습니다. 일찍 자야 하는데, 늘 늦게 자서 피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처럼 개인 차를 이용했던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바들 바들 떨면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차를 타기도 하고, 무슨 짐을 실는것 처럼 사람으로 꽉꽉 채워진 지하철을 타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졸리운 데다가 아침부터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그 번거로운 일을 했습니다. 왜냐면, 생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여나 직장에서 잘못되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사도 요한이 천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네 생물(Living Creature)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쉬지 않고 끊임없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며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하나님께 돌립니다. 쉬임없이 계속 이렇게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힘들지 않을까요? 쉬지 않고 밤낮 그렇게 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도 처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우리의 호흡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밤낮 쉬지 않고 호흡을 합니다. 호흡이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호흡을 멈추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생물들도 그렇게 창조된 것입니다. 이들의 호흡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저희들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 저희들의 생명은 시듭니다. 삶이 억지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저희들의 삶이 가장 아름답고 빛이 납니다. 왜냐면, 지음 받은 목적대로 쓰임 받기 때문입니다. 마치 기타가 못을 박는데 쓰일 때에는 부서지고 억지스럽지만, 음악을 위해 사용될 때 아름답고 빛이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잘 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은 시듭니다. 삶이 억지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의 영적 생존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온전히 드릴 때에 우리의 영적인 생명에 활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는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로 알수있습니다. 예배가 시작된 후 한 20분 정도 늦게 오십니까? 예수님과 지금 한 20마일 정도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한 10분 정도 계속해서 늦으십니까? 예수님과 10마일 정도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그만큼 예수님과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덜 소중해진 것입니다.   다시 예배를 잘 드리십시오. 다시 여러분의 영적인 생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챙기십시오. 예배 시작하기 10분전에까지 오셔서 먼저 기도해 보십시오. 먼저 오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만나주세요” 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10분, 20분 늦어서 허겁지겁 와서 그냥 좋은 강의 하나 듣는 식으로 예배 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령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를 온전히 드려 우리의 영혼이 되살아 날 때에, 내 삶을 둘러 싸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아내가 잘못해서, 자식이 잘못해서, 경제가 안 좋아서, 건강이 안 좋아서 라고 표면적으로만 보면 안됩니다. 그 이면의 영적인 부분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틀어져 있을 때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다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고 예수님과 가까워질 때 우리를 둘러 싼 많은 문제들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막막하신 분들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시련 속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예배를 잘 드리십시오. 이것이 가장 기본이요, 가장 중요한 영적인 해결책입니다.
여러분! 요즘에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2014년 6월 1일

김진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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