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SCROLL TO TOP

2022.02.20 09:49

7가지 죄악: 정욕

추천 수 0
Extra Form
일자 2022년 2월 20일
성경 사무엘하 11:1~5
MP3 Down http://www.fellowshipusa.com/podcast/dow...2_360p.mp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title.jpg

 

 

 

7가지 죄악: 정욕 

삼하11:1-5 

 

*어거스틴(AD354-430)은 초기 기독교 뿐 아니라,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신앙적 토대를 세웠던 영적 거장이었다. 그가 일찍이 4세기 무렵에 쓴 ‘신국론’은 대표적인 기독교 저작으로 그의 신학과 철학 사상을 보여준다. 그는 로마 제국의 역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명함으로써, 진정한 문명 국가는 올바른 정신적 기반, 그러니까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저작은 비단 신학 뿐 아니라 역사 철학과 정치 사상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영적 거장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이 되었던 것은 성적 욕구였다고 한다. 그는 이미 16살 때부터 동거를 시작했을 만큼 성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회심한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욕망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심지어 ‘주여, 제가 순결하고 성적으로 절제할 수 있게 하소서, 다만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절제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럼에도 지금 당장 충족하고 싶은 성적 욕망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악한 습관의 노예가 되었고, 자신의 의지로는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음을 탄식하고 있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성적 욕망 때문에 상처 입은 영혼들, 무너진 가정들은 넘쳐난다. 성적 욕구는 심지어 경건한 목회자와 교회를 한없이 추락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성적인 문제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훨씬 더 훌룡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욕의 문제는 이렇게 그저 남 이야기 하듯이 가십거리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욕의 죄는 기회만 되면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든 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숨겨져 있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1) 실제로 성적 욕망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항상 경계해야 할 죄악이다.  

사실 혼탁한 성문화가 성을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변질시켰지만, 성은 본래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것이 잘 사용되어지면 여전히 아름다운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드 영은 ‘성’에 대해 두 가지의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첫째로 성은 두 사람이 하나의 몸이 되어 서로 사랑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는 성적 결합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적 관계는 사랑과 생명의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성이 정욕에 의해 잘못 쓰여질 경우, 그것은 오히려 증오와 살인의 계기가 된다. 이것은 마치 심근경색 환자들에게 근육 완화제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이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사랑과 생명의 메신저가 되기도 하지만, 다이나마이트의 원료로 쓰여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악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선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다윗 이야기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먼저 이 성적 욕망은 인간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찾아올 수 있는 죄악임을 보여준다. 정욕의 화신처럼 보여지는 다윗은 원래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사울 왕이 자신을 시기해서 자신을 두 번씩이나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주께서 세우신 왕을 내 손으로 처단할 수 없다며 그를 살려주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마침내 원수와도 같았던 사울이 죽었을 때, 그는 그것을 기뻐하기는커녕 몇 날을 금식하며 슬퍼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다윗이 오늘 본문에 보면 전혀 엉뚱한 짓을 한다. 2절을 보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보이는 지라”  사실 이것이 문제다. ‘일부로 본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자 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그런 음욕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3절에 보면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압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까 하니” 그 여인은 바로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의 아내였다. 우리아는 오늘 본문에서도 말하듯이 헷 사람, 그러니까 이방인 출신으로 개종한 자였다. 이방인 출신 개종자가 장수의 자리까지 올랐으면 그의 충성심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지금 다윗의 눈에 들어온 여자가 그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였던 것이다. 이 일이 이쯤 되면 다윗은 거기서 모든 것을 스톱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4절에 보면 이렇게 명령한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리고 5절에 보면 마침내 그 여자를 임신시키고 말았다.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지금 신하는 목숨 바쳐 전쟁터 나가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왕이라는 자가 그런 신하의 아내를 불러다가 동침을 하고 임신을 시켰으니, 파렴치도 이런 파렴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정욕의 힘이다.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나이로 보면 전혀 정욕이 없을 나이임에도, 심지어 여자라도, 어린 청소년이라도 정욕의 유혹의 앞에서는 속수 무책이다.    

*정욕의 유혹으로 고통받는 수도사에게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사이러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만일 네가 유혹받지 않고 있다면 네가 이미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올 때 그 유혹과 맞서 싸우지 않는 사람은 이미 그 육신에 죄가 침투한 사람이다. 이미 죄악이 그 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유혹 자체가 이미 유혹이 아닌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누구나 정욕의 죄악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며, 아닌 척하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정욕의 유혹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사막의 나이든 수도사들에게 조차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막의 교부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정욕의 유혹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정욕의 유혹으로 분투하고 있는 것을 쉬쉬하지도 않았고, 그런 사람들을 영적이지 못하다고 욕하지도 않았다. 정욕의 유혹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수시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1) 문제는 정욕의 유혹에 넘어갔을 때 정욕의 쾌락이 지나가고 난 후 나타나는 심각한 후유증이다. 결국에는 자신과 주변 모두를 망가뜨린다. 사실 모든 죄악들의 문제는 그 죄악 자체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삶의 전부가 망가지고,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경우에도 결국 이 일로 인해 다윗 자신의 가정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경고한 바 있다. 삼하 12:10,11이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고....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그런데 나중에 말씀하신 그대로 일들이 되어졌다.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 하셨는데,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강간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분히 여겼던 다말의 오라비인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게 된다.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아무리 배다른 형제지간이라 하지만 형제들 끼리 강간하고 살인을 저지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 이 일로 쫒겨난 압살롬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고, 아버지 다윗은 왕궁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궁에 남아 있던 다윗의 후궁들을 압살롬은 왕궁 옥상에서 범하게 된다. 비록 장막을 치긴 했지만 온 이스라엘의 무리 앞에서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을 한 것이다. 너무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패륜적 행위의 장소는, 바로 다윗이 음욕을 품은 채 밧세바를 내려다 보았던 바로 그 옥상이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의 가정 뿐 아니라, 밧세바의 가정도 그야말로 산산 조각이 났다. 다윗은 자신이 밧세바를 임신시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장터에서 불러들인다. 밧세바와 우리아가 동침하게 함으로 자신이 밧세바를 임신시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미련스러울 만큼 충직했던 우리아는 부하들이 전장터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찌 자신만 집에 들어가 편히 잘 수 있느냐며 왕궁 문에서 잔다. 삼하11:9이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그러자 다윗은 이번에는 요압 장군에게 은밀히 편지를 써서 우리아를 아주 위험한 싸움터로 보내 죽게 하라고 한다. 삼하11:15이다.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온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던 왕 다윗이 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기 위해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성적인 죄악이 가져다주는 무서운 결말이다.

 

2-2) 두 번 째는 정욕의 죄악은 심각한 죄책감을 남기고, 그 죄책감이 신앙의 성장을 계속해서 방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로 자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들이 자신의 영적 성장을 계속해서 방해한다.

정말로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정욕으로 말미암는 죄악에 대해서는 다른 죄악보다 훨씬 더 관대함을 잃는다. 유달리 성적인 죄에 대해서만큼은 자비가 없는 것이다. 사실 식탐을 많이 했다고 교회에서 파면당하는 목회자는 없다. 나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슈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달리 정욕의 죄 만큼은 그 파장이 크고 치명적이다. 사기나 폭행으로, 심지어 약물 중독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다시 현역에 복귀하는 경우는 종종 보지만, 성적인 죄를 범한 경우는 좀처럼 회복이 안된다. 성적인 죄악은 항상 꼬리표가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신앙 생활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스스로 왕으로서의 품격을 잃어버렸다. 범죄를 꾸미는 과정에서 참모인 요압 장군에게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윗은 이 일로 인한 죄책감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윗의 행동은 평생을 훈련하고 깨달았던 자신의 신앙관이나 통치 철학하고도 맞지 않았지만, 정욕의 죄악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정욕의 죄악이 갖는 가장 무서운 힘은 이것이 신앙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영적 성장의 길을 차단해버리고 만다. 사실 이 성적인 죄악에 대해서는 남녀노소가 똑같이 노출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남성들에게 성적인 유혹이 더 많다.   예를 들면 청소년 시기부터 음란한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것을 보고, 요즘 같으면 음란한 게임 같은 것을 즐기고, 심지어 성적인 관계를 하기도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즈음만 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로 인기가 높았던 잡지는 ‘플레이보이’라는 잡지였다. 여러분 중에도 아마 보신 분들이 있겠지만 음란한 사진들로 가득한 잡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음란한 것들이 갖는 중독성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것들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일들은 사실 자신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아무리 예배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성경공부를 해도, 그런 은혜들이 교회 안이든 바깥이든 주를 위한 섬김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그런 섬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음란한 성적 유혹에 빠져 있다면, 그런 섬김은 자신의 영적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생하며 봉사는 하는데, 몸만 힘들지 그것이 영적인 기쁨이나 성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성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성적인 죄악들을 지속하게 되면, 어느 순간 반드시 탄로가 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결국 성적인 죄악이 자신의 영적인 삶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를 어둠으로 몰아가고, 어쩌면 그 일로 인해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될 수도 있다. 

 

3-1)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욕의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어느 누구도 정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다만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 나갈 뿐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나태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영적인 각성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성적인 죄악을 저지르게 된 이유도 먼저는 그가 나태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1절에 보면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 해가 돌아왔다’는 말은 싸움의 때가 왔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지역은 우기가 되면 비가 많이 와서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 길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 병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기가 되면 중단했던 전쟁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지금 그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눈여겨 보아야 할 말씀이 있다. 1절에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이다. 그 당시에는 전쟁이 나면 왕이 가장 먼저 앞장섰다. 그저 궁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이 직접 전장터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1절에 보면 요압과 그의 부하들만 보내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라고 한다. 

그것 뿐 아니다. 그는 2절에 보면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라고 한다. 저녁이 되면 침상에 누워야 할 시간인데, 다윗은 오히려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다윗이 낮잠을 한가롭게 자다가 저녁 무렵에 일어난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이 생명을 다투며 싸움을 할 때 함께 전장터에 나가지도 않았고, 그 시간에 깨어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지극히 나태한 가운데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나태함이 결국은 그로 하여금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게 만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는 즉시 우리 안에 죄악된 본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죄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을 칭의(justification)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운 자로 인정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거룩한 삶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것을 성화(purification)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성화의 노력을 한다고 해서 누구든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완전한 존재가 되어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믿을 때 뿐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보혈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한 순간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지위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우리 모두는 부활하여 주님의 몸과 같이 영광의 형체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 영화롭게 되어진(glorification) 우리 모두는 비로서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죄를 질래야 질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인 각성이다. 늘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순간 음욕을 품게 되고 죄악에 빠진다. 갈5:19에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라고 하는데, 이 육체의 일을 이기는 방법을 갈5:16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행할 때 비로서 우리는 음욕을 이겨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음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성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음란한 동영상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고, 성적인 범죄 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신앙의 루틴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싶다. 우리가 미셔널 라이프를 살아내려면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함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 날 때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들 치고 하루에 십분이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시간을 정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기도하고, 점심 때 기도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주일 153기도운동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여러분의 삶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고, 교회가 바뀔 것이다. 정욕의 죄악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3-2) 두 번째는 내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의식하는 것이다. 다른 보는 사람 아무도 없어도 나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생각하면 우리는 좀처럼 죄를 범할 수 없다.   

사막의 교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망각했기 때문에 정욕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 안을 채우려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을 묵상할 때, 그분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 또한 거룩하게 될 것이다.”

요셉은 자기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창39:9에 보면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 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가 두려워한 것은 사실 그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였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어도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한 것이다. 그러니 그는 정욕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제 7가지 죄악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정욕을 포함한 이 치명적인 죄의 유혹들을 물리치고, 어둠의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혔던 패트릭의 기도문을 소개하려고 한다. 5세기 무렵 야만적인 아일랜드의 켈트족을 복음화 시켰던 패트릭은 원래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16세 때에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기적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몇 년 후 탈출을 하게 된다. 영국에 돌아온 후 그는 수도사가 되어, AD 431년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일랜드를 복음화하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가 기도할 때 죽은 나무가 살아나기도 했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야만족이었던 켈트족은 왕으로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일시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엄청난 복음의 역사를 나타낼 때 항상 했다고 하는 기도문이 전해져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패트릭의 기도문’이라고 알려진 기도문이다. ‘오늘도 나는 일어섭니다. 제 앞에 계신 그리스도, 제 뒤에 계신 그리스도, 제 아래 계신 그리스도, 제 위에 계신 그리스도, 제가 누울 때 계신 그리스도, 제가 앉아 있을 때 계신 그리스도, 늘 저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나는 오늘도 그분과 함께 일어섭니다’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항상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끊임없이 자신 안에 솟아나는 죄의 유혹을 이겨냈다. 분노의 유혹, 영적인 나태함의 유혹,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허영심의 유혹, 탐식의 유혹, 시기와 질투의 유혹, 탐욕의 유혹, 그리고 정욕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의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줄 수 있었다. 이제 우리 휄로쉽의 가족 여러분들도 어디를 가든 어떤 형편에 처하든 이 기도문을 통해, 죄의 유혹을 이기며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1. 선교적 영성: 환대

    선교적 영성: 환대 (4/24/22) 눅10:30-37 ·영성은 궁극적으로 타자를 위한 것이다. 타자로서의 하나님과 타자로서의 형제와 자매, 특히 고통 받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영성은 결국 예수님께서 강조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일자2022년 4월 24일 성경누가복음 10:30~37
    Read More
  2. No Image

    부활절 야외 연합예배

    부활절 야외 연합예배
    일자2022년 4월 17일
    Read More
  3.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4/10/22) 레16:8-10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먹는다. 머리로는 감사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실상은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사보다는 당장 내 삶의 문제가 더 염려스럽고, 그것에 집중...
    일자2022년 4월 10일 성경레위기 16:8~10
    Read More
  4. 선교적 영성: 머무름

    선교적 영성: 머무름 (4/3/22) 출2:11-15 ·현대 사회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동성이다. 지리적인 이동만 아니라 직장도, 가정도, 신앙 공동체도 옮겨 다니는 것에 익숙하다. 물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움직여야만 할 때도 있지만 선택의 자유...
    일자2022년 4월 3일 성경출애굽기 2:11~15
    Read More
  5. Have mercy upon me

    Have mercy upon me 마태복음 20:1~10 심창섭 목사
    일자2022년 3월 27일 성경마태복음 20:1~10
    Read More
  6. 선교적 영성: 침묵

    선교적 영성: 침묵 (3/20/22) 수6:2-5,10 ·말은 의사를 전달하거나 교제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생명력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려면 결국은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말은 그런 신뢰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
    일자2022년 3월 20일 성경여호수아 6:2~5,10
    Read More
  7. 선교적 영성: 물러섬

    선교적 영성: 물러섬 (3/13/22) 갈1:16,17 ·물러섬은 단순히 홀로 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자극으로부터의 물러섬(withdrawal)이며,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 부터의 분리(detachment)라고 할 수 있다. 1) 선교적 삶을 살았던 사도 ...
    일자2022년 3월 13일 성경갈라디아서 1:16,17
    Read More
  8. 선교적 영성: 자기 비움

    선교적 영성: 자기 비움 (3/6/22) 빌2:5-8 ·요즘 신앙은 있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앙 생활 자체를 교회 중심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churchless ·교회의 세속화의 문제는 결국 세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
    일자2022년 3월 6일 성경빌립보서 2:5~8
    Read More
  9. 터져 나오는 예배의 이유

    터져 나오는 예배의 이유 요한복음 5:1~14 I. 믿음 A.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B. 진리에 대하여 내 삶을 던지는 것이다. 맞추는 것이다. C.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은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II...
    일자2022년 2월 27일 성경요한복음 5:1~14
    Read More
  10. 7가지 죄악: 정욕

    7가지 죄악: 정욕 삼하11:1-5 *어거스틴(AD354-430)은 초기 기독교 뿐 아니라,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서도 신앙적 토대를 세웠던 영적 거장이었다. 그가 일찍이 4세기 무렵에 쓴 ‘신국론’은 대표적인 기독교 저작으로 그의 신학과 철학 사상을 ...
    일자2022년 2월 20일 성경사무엘하 11:1~5
    Read More
  11. 7가지 죄악: 탐욕

    7가지 죄악: 탐욕 (2/13/22) 마6:24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어떤 것이 우선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먼저 조금이라도 보여드리고 나면, 그 후에 물질에 대한 욕...
    일자2022년 2월 13일 성경마태복음 6:24
    Read More
  12. 7가지 죄악: 시기

    7가지 죄악: 시기 (2/6/22) 삼상18:6-9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이 불행해지거나 잘못되기를 바라는 눈을 로마인들은 ‘악마의 눈’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눈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하나님께 ...
    일자2022년 2월 6일 성경사무엘상 18:6~9
    Read More
  13. 7가지 죄악: 탐식

    7가지 죄악: 탐식 (1/30/22) 창3:3,6 ·치명적 죄악 7가지 중에 가장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것은 탐식의 죄이다. 탐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죄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른 빵(paxamas) 두 조각이 하루 분 ...
    일자2022년 1월 30일 성경창세기 3:3, 6
    Read More
  14. 7가지 죄악: 허영심

    7가지 죄악: 허영심 (1/23/22) 창11:1-4 ·칭찬과 격려는 메마른 우리의 삶에 에너지와 같다. 서로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지체들이 있을 때 누구도 부럽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들이 갖는 중독성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않...
    일자2022년 1월 23일 성경창세기 11:1~4
    Read More
  15. 7가지 죄악: 나태

    7가지 죄악: 나태 (1/16/22) 눅12:18-21 ·나태는 삶의 속도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달팽이처럼 느려도 나태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독수리처럼 빠르고 분주해도 게으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다. 1) 나태는 삶의 속도나 결과물들에 관한 것이 아...
    일자2022년 1월 16일 성경누가복음 12:18~21
    Read More
  16. 7가지 죄악: 분노

    7가지 죄악: 분노 (1/9/22) 눅9:51-56 ·초기 기독교의 성장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로마 제국에 의해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고, 일반 대중을 향한 설교나 선교적 목적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성장의 원인...
    일자2022년 1월 9일 성경누가복음 9:51~56
    Read More
  17. 피로 사회

    피로 사회 (1/2/22) 창11:31-12:1 ·우울증, 과잉 행동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 소진 증후군 등 신경성 질환들이 21세기의 주된 질환이 된 이유는 오늘날 시대가 성과를 중시하는 성과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과 사회의 주체들은 그것이 착...
    일자2022년 1월 2일 성경창세기 11:31~12:1
    Read More
  18. 느보산에 서서

    “느보산에 서서” 신명기 34 : 1 ~ 3, 행 7 : 37 ~ 38 Dec 26, 2021 느보산에 오른 모세 Q. 모세의 일생길에서 “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Q. 모세가 “홀로” 산에 올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음이 올해를 마무리 하는 ...
    일자2021년 12월 26일 성경신명기 34:1~3, 행7:37~38
    Read More
  19. 별 보고서

    [ 별 보고서 ]................................................................ 2021.12.19 [ 마태복음 2장 1-3절 ]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일자2021년 12월 19일 성경마태복음 2:1~3
    Read More
  20. 흩어진 나그네의 꿈

    제목: 흩어진 나그네의 꿈 설교: 조용중 선교사 본문: 베드로전서 1:1~5
    일자2021년 12월 12일 성경베드로전서 1:1~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9 Next
/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