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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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 교회는 1990년 9월 9일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있는 Walter Johnson High School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탄생 했습니다. 그후 창립 2년 만에 6백 명의 교인으로 성장 했으며, 1993년 여름에는 락빌에 있는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적인 성장으로 인해 1997년 6월 새 건물을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부지(34에이커)를 구입한후 게이더스버그에 있는 Watkins Mill High School로 예배 장소를 옮겼습니다. 현재 건물은 1999년 6월 기공 하여 2001년 2월 19일에 입당 하였습니다. 2002년 11월부터 버지니아 스털링(Sterling)에서 예배를 시작 했으며, 2006년 3월 버지니아 캠퍼스 건물을 구입하였습니다. 현재 2700명의 교인들이 매주 모여 예배드리는 생동하는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 이것은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온 교인들이 다시 한번 확인한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

1. 우리의 목적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이 언약에 충실할 것을 약속합니다. 단순히 예수를 따르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하는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다음 세대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은 교회에서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리더로 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3.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삶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투명하고 진실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4. 우리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의 사명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래는 성직자들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 달렸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특별한 소명을 받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 그리고 선교사가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일반 성도들과 달리 전 생애와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바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우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사람들을 이 일을 위해 세울것을 다짐합니다.

 

5.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등대로 세우셨다고 믿습니다. 절대 우연이나 사고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휄로쉽교회로 지명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세우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명이 끝날때까지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모든 노력을 총동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6. 오늘 우리는 20년전 하나님께서 우리 창립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신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쉬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강하고 담대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2010년 9월 12일 휄로쉽교회 교우 모두



◈ 개척기(1990-1993)

휄로쉽교회 창립 목적

신학교를 갓 졸업한 후 처음 부임했던 교회에서 8년 동안 목회하면서 언젠가는 꼭 교회를 개척하고 싶다는 소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성도들이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 하며 살아가는 그런 모습의 교회를 그리워했다.
실은 목회 처음부터 나는 그런 교회를 갈망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하나님, 저는 700명의 교인보다는 70명의 제자를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당장이라도 쓰임 받을수 있는, 철저하게 헌신된 신앙의 동지들,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목회를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엉뚱하게도 나를 미주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그 당시 26년이된 침례교회에 보내시고 거기서 목회의 기초 훈련을 받게 하셨다. 돌이켜 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나에게 상당히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8년간의 목회를 통해 교회는 거의 두 배로 성장했고, 이민 교회로서는 매우 안정된 분위기 속에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며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꿈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몇몇의 성도들과 함께 소그룹 제자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은 같이 기도하는 시간에 갑자기 마음속에'심는다(Plant)'라는 단어가 새겨지면서'언젠가는 교회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라는 확신을 받고, 서로 이야기하며 기도한 적도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꼭 교회를 개척하게 될 것 이다. 사람을 키우고, 제자를 만들고, 성경에 나오는 모습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런 모습의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를 세우게 될 때가 올 것이다.'라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그 후, 목회는 오히려 더 바빠지고 섬기던 교회는 계속 성장했다. 교회 개척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냈다. 그 사이 태어난 두 자녀를 키우는 재미와 부흥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목회에 전념했고, 가정도 점점 안정을 찾으며 나는 편안한 삶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증축하는 문제를 놓고 바쁘게 뛰어다니던 하루였다. 부목사와 함께 병원에 입원 중인 교인에게 심방을 가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하여 막 들어서던 중, 나는 내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목사님,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 700명의 교인보다는 70명의 제자를 키우겠 다고 약속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700명의 교인은 있는데 정작 제자는 7명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실패한 것 같아."
그 고백이, 그 후에도 계속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며 맴돌았다. 그런 갈등을 가지고도 어떻게 해야 될 지 막연하기만 했다. 내 입으로"지금까지의 나의 목회는 실패였다."라고 고백은 했지만, 정작 그 해결책은 몰랐던 것이다. 갈등과 고민은 많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못 찾은 채,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또 다시 묻어 두고 잊어 버렸다. 솔직히 그때도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너무 힘든 일같이 느껴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안정된 목회를 하던 사람이 모든 것을 접고 다시 시작 한다는 것은, 낭만적으로 꿈꿀 수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직접 부딪쳐서 행동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나를 통해 은혜 받고 교회에 재미를 붙이고 사는 교인들을 생각할 때, 그만둔다는 것은 목자의 입장에서도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도저히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989년 10월 아침, 집에서 혼자 경건의 시간을 갖던 중이었다. 무심코 누가복음 5장 뒷부분에 있는 말씀을 읽는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라 (눅 5:38)'는 말씀이 성경에서 튀어나올 듯 나의 눈앞에 확대되어 보이면서,'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새 시대를 위한 새 부대를 준비하라.'는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 왔다. 결국 아내와 상의한 후, 그때까지 섬기던 교회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그만 두려니까, 말이 쉽지, 너무나 큰 갈등과 고민이 나의 마음을 괴롭히며 영혼을 덮어왔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기만 하던 어느 하루, 속이 답답하여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무작정 차를 타고 95번 고속도로에 올랐다. 볼티모어를 지나 한참 북쪽으로 달려가다가, 어느 구석진 음식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공책을 꺼내 놓고 나의 고통을 하나님께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된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도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난 꼭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겠다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 예레미야 31장을 읽으라는 음성이 들렸다. 정신이 번쩍 나서 곧장 예레미야 31장을 찾아 읽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때는 꼭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고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말씀을 그렇게 기다렸던 것이다.
예레미야 31장을 읽어 가던 중 두 가지 결정적인 단어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5절에 나오는'다시 심는다 (Again you will plant)'는 단어와 12절에 나오는'새 포도주 (New wine)'라는 단어었다. 워싱턴으로 결정하신 것이다. 이 결정은 말할 것 없이 나에게 숱한 갈등을 하게 했으며, 그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오해와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
해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한 확신을 주셨기 때문에 또 하나의 고비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결국 예레미야 31장은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씀이 되었다. 우리 교회를 세우게 된 동기도, 우리 교회의 창립 목적도 다 여기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휄로쉽교회의 창립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광야 같은 인생의 나그네 길에서 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그리고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 (예레미야 31:1-3)
둘째, 이와 같이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감사와 감격에 찬 예배를 드리는 교회. (예레미야 31:4-7)
셋째,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주위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큰 무리를 이루어 찾아오는 교회. (예레미야 31:8-10)
넷째,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성도들이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교제하는 교회. (예레미야 31:11-14)

 

1990년

9월 9일

창립예배를 Maryland Bethesda에 있는 Walter Johnson High School에서 약 80여명이 모여 1부(오전 10시) 영어 예배, 2부(12시) 한국어 예배를 김원기 담임목사 인도로 드리다.

9월 14일

첫 다락방(금요) 기도회를갖고 매주 모이기로 하다.

11월 18일

제1기 새가족반을 53명이 수료하다.

1991년

1월 4-5일

한국어 회중 제 1회 신년 금식 수양회를 안나산 기도원에서 갖다.

  1월 11-12일 영어 회중 제 1회 신년 금식 수양회를 안나산 기도원에서 갖다.

1월 27일

교회 월보 '코이노니아'가 발간되다.

2월 24일

교회학교 및 제자 훈련반을 시작하다.

5월 27일

사랑의 방(구역모임)이 6개 구역에 88 가정으로 편성되어 시작되다.

7월 20-21일

Cunningham Falls Park에서 전 교인 피크닉과 아울러 첫 세례식(13명)을 갖다.

8월 19-23일

제 1회 전교인 수양회를 김원기 목사를 강사로 Chevy Chase에 있는 National 4H Center에서 개최하다.

     
1992년

1월 17일

금요기도회 장소를 Rockville에 있는 Faith United Methodist Church로 옮기다.

6월 18-20일

제 2회 전교인 수양회가 김원기 목사를 강사로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Skycroft Retreat Center에서 열리다.

8월 2일

예배 장소를 창고 건물(1455 Research Blvd., Rockville)로 옮겨 첫 예배를 드리다.

9월 14일

매일 새벽예배를 시작하다.

9월 16일

매주 수요예배를 시작하다.

9월 21일

매주 월요일 여성기도회를 시작하다.

10월 24일

매주 토요일 Timothy (중고등부) 기도회 시작하다.

10월 31일

할로윈 파티 대신에 첫번 Fall Festival을 교회에서 개최하다.

12월 27일

교회 소식지 '우리하나되어'가 처음 발간되고, '코이노니아'는 신앙 전문 계간잡지로 바꾸다

     
1993년

1월 20일

공동의회를 개최하여 교회 헌장 및 규약, 세계선교센터 헌장을 인준하다.

3월 5일

정기 심야 기도회(매월 첫 주 금요일)를 시작하다.

6월 6일

교회 건물 구입을 위한 임시 공동의회를 갖고 교회 건물 및 대지를 6백만 달러에 구입하기로 결정하다.

6월 18-20일

제 1회 남성 수양회를 김만풍 목사(지구촌 교회 공동담임)를 강사로 Potomac Park Camp에서개최하다.

7월 11일

3부 예배로 확장하다.

9월 22일

정기 공동의회를 개최하여 예산을 인준하고 첫번 제직회를 구성하다.

10월 1일

'사랑의 방'을 주 1회에서 월 1회로 조정하고 연령별 모임을 해체하여 ABF(Adult Bible Fellowship)로 재조직하다.

11월 3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파이오니어 클럽을 매주 수요일 시작하다.

11월 12-14일

제 1회 여성 수양회를 우명자 사모(이동원목사)를 강사로 Potomac Park Camp에서 개최하다.

11월 28일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 자녀들에게 선물을 대신 전하는 Prison Fellowship Ministry의 Angel Tree 프로그램에 66가정이 참여하다.


◈ 1차 성장기(1994-2001)


대책 없이 맞은 첫 번째 고비

교회를 시작하면서 나는 6년에 한 번 안식년을 가질 수 있도록 교회에 요청했다. 처음 목회 경험을 통해 아무리 열정과 헌신이 있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목회를 위해서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탈진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쉼과 회복, 또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이 년도 아닌 30-40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것은 의도적인 안식년에 대한 계획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9년은 안식년 없이 지나갔다. 바쁜 탓도 있었지만 목회가 너무 재미있다 보니 안식년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일이 좋았다. 사역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모멘텀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예기치 않던 목회의 고비가 찾아왔다. '첫 번째 열차 사고'라고 부르는 이 고비는 언뜻 생각하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작은 경고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나는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부인하며 더 속도를 내어 달려갔던 것이다.

기차를 천천히 운행할 때는 갑자기 멈추더라도 긴 거리가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속력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갑자기 멈출 때에는 속력에 비례하여 그에 상당하는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속력을 낼 줄만 알았지, 갑자기 멈출 준비는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9년 동안 나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선교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여러 집회에 강사로도 초청되었고, 모교였던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비행기로 통근하면서 설교학을 가르치기도 하였고, 2년에 걸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또 하나의 석사 학위를 마치기도 하였다.
그 사이 개척 당시 2살과 4살이었던 아이들과 개척하고 태어난 막내는 가정에서도 많은 부담을 가지게 하였다. 워낙 아내의 내조가 탁월하여 사실 가정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성장했지만 이제는 나의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였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다 잘됐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가정도 행복했고, 교회도 부흥했고, 외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냥 이대로 나가면 다 잘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옆에 엄청난 함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열차 사고의 시작은 그로부터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 멤버 중의 하나였고 내 비서로 일하던,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부부가 갑자기 교회를 떠나겠다고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서로 많이 의지하고 사랑했는데 갑자기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교회를 세우고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초창기에 찾아온 교인들 가운데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실망도 되고, 아쉽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창립 멤버 중에 교회를 떠난 사람은 한 가정밖에 없었다.
사랑하고 의지했기에 아픔과 허탈함은 그만큼 더 컸다. 교회를 시작한 것은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말고 같이 가자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끝까지 갈 거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다른 교회는 사람들이 철새처럼 오고 가지만 우리들은 그러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아무리 실망스럽고 섭섭한 일들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하며 이해하고 사랑으로 덮어주자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깝게 살자고 약속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뭐 그리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정말 순수하게 그들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했는데, 그래서 물어 보았다. "왜 떠나느냐?"고. 그랬더니, "목사님이 아버지같이 평생 옆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데, 그럴 것 같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언젠가는 그냥 훨훨 떠나버릴 것 같아서 그러기 전에 차라리 자기들이 먼저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말문이 막히고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적어도 이들은 아닌데,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해도 이건 아닌데 하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까지 충격받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달랐다. 이미 17년이나 목회살림 경험이 있는 목사였지만 그때는 나의 꿈과 소신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 싫었다. 목회도 싫었고, 사람을 키운다는 것도 싫었고, 사람을 믿는다는 것마저 싫었다. 억울했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합류하고, 또 필요하면 떠나면서 나는?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이렇게 이용당하고, 평생을 그렇게 바보같이 살고, 나만 약속 지키고, 그래서 결국 나에게는 뭐가 남는단 말인가? 사람에게 속은 것 같고, 하나님께 속은 것 같고,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평범한 목회를 할 걸. 괜히 700명보다는 70명의 제자가 더 좋다고 큰소리 치다가 결국 함께 교회를 시작했던 동지도 지키지 못하는 졸장부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뭐라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교인들이 수근거릴까봐 걱정됐다.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어서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것을 생각하니 다 집어치우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나의 리더십에 치명적인 타격이 온 것 같았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내 리더십의 검증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다고 믿었다. '나는 실패했다!'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했는지 뒤돌아보면 좀 안타깝고 한심스럽지만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문제로 깊은 수렁에 빠졌고, 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아 갑자기 교회에 안식년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 당시 심정으로는 정말 더 이상 목회를 하기 싫었다. 아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힘도, 에너지도 없었다.
상임위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상임위원들도 사람이기에 담임 목사가 힘들어 하는 것을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면 도와주지도 못하고 오히려 걱정만 늘어 좀 정도껏 해야 하는데, 그때 난 그런 배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다 얘기했다. "내가 여러분이 싫다거나, 휄로쉽교회가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목회가 힘들다. 사람 키우는 것에 지쳤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주시면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신중하게 기도한 뒤 목회를 떠나려 한다. 목회를 하며 계속 받는 상처들과 아픔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선 3개월의 안식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더 필요하면 3개월을 더 청구할테니 허락해달라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상임위원들 모두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진정어린 마음으로 나의 요구를 혼쾌히 들어 주었다. 너무 수고해서 그런 것이니 잘 쉬고 오라고,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며 안식년을 떠나는 나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주던 교인들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절뚝거리면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첫 안식년을 맞았다. 처음 한 달은
무조건 쉬었다. 오랫만에 아이들도 맡기고,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리조트로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쉬면서 안정을 취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너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하루는 내가 키운 한 젊은 동역자가 내가 걱정이 돼서 집으로 찾아왔다. 대화를 나누던 중 전혀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도대체 지금 목사님 심정이 어떤 거냐고 물었다. 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 "지금 내 심정은 꼭 긴 터널에 들어왔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저 앞에 빛이 보여야 하는데 빛이 없어. 빛이 보이면 아무리 멀고 어두워도 희망이 있는데, 빛이 보이질 않으니 그냥 여기서 풀석 주저앉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뭐하러 사서 고생해?"
어물어물하다 보니 거의 3개월이 흘렀다. 계속 애처롭게 매달리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답답했다. 나를 버리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냉정하실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돌아갈 준비도 되지 않아 3개월을 더 연장하고 싶었지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나를 기다리는 교인들이 불쌍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냥 담임목사를 불쌍히 여기며 빨리 회복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교인들이 불쌍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둘째는 지금 상태로는 3개월 더 기다려봐야 하나도 나아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6개월을 쉬고도 회복되지 않으면 더 미안할 텐데. 그래서 전혀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교회에 그렇게 통보했다.

9월 새 회계년도 준비의 일환으로 8월 마지막에 오이코스 목자 수양회가 계획되어 있었다. 안식년을 마치고 교인들에게 서기 전에 먼저 오이코스 수양회를 인도하게 되어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수양회를 마치고, 그 다음 날 3개월 만에 예배를 인도하게 되어 있었다. 아내와함께 수양회 장소에 갔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어두운 나의 마음은 그들을 볼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미안하고 민망해서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고, 드디어 집회가 시작됐다. 찬양이 시작될 때를 기다려 조금 늦게 집회 장소로 들어갔다. 회복된 담임목사를 기대하며 반갑게 맞을 그들을 대할 자신이 없었다. '어떡하지? 아직 준비되지 못한 내 모습을 감출 수도 없고, 괜찮은 듯이 위선을 떨고 싶지도 않고.'집회 시작 직전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깊은 혼동 속에서 집회 장소로 들어가 맨 앞으로 가 섰다. 한창 뜨거운 찬양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찬양을 따라 불렀지만 마음은 답답했고 허전했다. 앞이 깜깜했다. 도대체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질문했다. "하나님, 저는 어쩌면 좋지요? 나의 이 마음은 어떻게 달래야 하나요? 이 슬픔, 이 연민, 이 절망, 나는 어떡해야 하죠? 나는 실패했어요. 사람을 키우겠다고 장담을 하며 교회를 시작했는데 정작 키운 사람이 없어요. 아니 오히려 키운 사람들이 주위에서 떠났어요." 그러면서 속으로 좌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내 가슴에 들려왔다. "뒤를 돌아봐라!" "왜요?" 나는 반문했다. "뒤를 돌아봐라!"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 눈에는 내 뒤에서 열심히 찬양을 부르며 은혜 받은 오이코스 목자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 또 하나님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시면서 말씀하셨다. "네가 실패했다고? 키운 사람이 없다고? 너를 따르는 사람이 없다고? 네가 외롭다고? 그러면 네 뒤에 있는 이 소중한 사람들은 무엇이냐? 너를 따르고, 너를 사랑하고, 네가 힘들어 하니까 너를 위해 저렇게 애타게 기도하며 걱정하는 100명의 교인들이 있는데, 왜 실패했다고 하느냐? 왜 외롭다고 하는냐?"
갑자기 몽둥이로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눈 앞이 흐려졌다.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 그렇구나. 실패한 것이 아니었구나. 나에게는 이렇게 좋은 믿음의 동지들이 있었구나!' 그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나를 연단 하신 것이다. 그 수많은 아픔과 실망, 그리고 좌절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히 알게 하기 위한 풀무였다. 연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왔지만 '부르시니까 순종한다'는 심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던 나를 구출하셨다는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다음 날 주일 예배를 인도했다. 이젠 모든 것이 회복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더 큰 충격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 시절 워싱턴 한인 침례 교회에서 만나 교회 사찰을 거쳐 전도사로 일하면서 바이블 칼리지를 졸업하고, 켄터키에 있는 남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한 후 나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나의 초청으로 인해 우리 교회 창립 멤버로, 첫 부목사로 나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따르던 박진용 목사가 갑자기 워싱턴 주 타코마라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겠다며 사임 의사를 전했다. 며칠 안 돼서 내가 전도해서 키우고 내가 다닌 신학교에 보내 우리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자란 정 스티브 목사가 로스엔젤레스에 교회를 개척하겠다며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또 내가 아들처럼 키워 같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교회에서 안수 받은 윤 탐 목사도 교회를 그만두겠다고 나를 찾아왔다.
완전히 혼이 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돌아온 후 교회 건축을 위해 건축 헌금을 시작한 시점에 이들이 떠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아주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교인들의 사기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달랬다. 더 신중하게 기도하고 결정하라고. 그리고 그만두더라도 나와 교회를 위해서 일 년만 참으라고. 하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이미 기도하고 결정한 일이기에 계획대로 움직이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나를 습격한 회의는 봇물이 터진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이다지도 매정할 수 있을까? 그동안 쌓은 정을 생각하더라도 일 년은 기다려줄 수 있을텐데.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내가 무슨 죄인이나 된 듯이, 교인들에게 내가 무슨 내면의 문제라도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 받을까 마음 졸이며 간신히 그 고비를 넘겼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미 큰 단련을 받은 후라 이번 일은 잘 견뎠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교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세월이 가면 이해하겠지' 하며 그들의 시선을 감내했다.
결국 그렇게 우리 교회를 떠나 교회를 개척했던 두 목사는 내가 염려한 대로 개척에 실패하고 얼마 가지 못해 교회를 닫았다. 남은 한 사람도 결국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지만 목회자로서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다. 박진용 목사는 얼마 전부터 우리 교회 버지니아 캠퍼스로 돌아와 다시 조금씩 나와 동역을 시작했다. 지금도 나 혼자 아쉬운 것은 그때 그들이 그렇게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조금 더 훈련과 경험을 쌓은 뒤, 우리 교회의 후원을 받아 교회를 개척했더라면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걱정했지만 교회는 더 단단해졌다. 이것이 목회를 하면서 늘 배우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흔들릴 것 같은데 그런 과도기에 오히려 교인들은 더 기도하며 떠난 사람들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을 본다. (우리는 곧 건축에 들어갔고 2년 뒤 새 건물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열차 사고'였다.

 

1994년

1월 1일

365일 연쇄 금식 기도를 시작하다.

2월 25일

버지니아 지역 심야 기도회를 Oren Music 건물에서 시작하다.

5월 8일

볼티모어에 우리 교회를 출석 하던 John Hopkins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교회(Grace Life Church)를 세우고 오픈하우스를 갖다.

6월 11일

제 1회'True Love Waits' 캠페인 순결 서약식을 갖다.

9월 11일

창립 4주년 감사예배 및 김기범 전도사 목사 안수식과 장윤삼 집사 안수식 및 이정관 장로(협동장로) 취임식을 갖다.

 

   
1995년

5월 14일

영어회중 6명 집사 (Frank Bachhuber, Jay Chung, Sunny Kim, Walter Lee, Frank Pyon, Michael Quon) 안수식을 갖다.

 

   
1996년

1월

국내 전도 및 교회 개척센터가 세계선교센터에서 독립되어 발족하다.

 

2월 17일

목사(이다윗, 김병한, 김숭봉, 나승찬) 안수식을 갖다.

 

3월 3일

이다윗/안나 선교사 내몽고로 파송하다.

 

3월 20일

김숭봉/영선 선교사 필리핀으로 파송하다.

 

3월 31일

김경봉, 김우성, 김현응, 신수영, 이영호, 이인영, 조병서, 한내걸을 집사(8명)로 안수하다.

 

9월 1일

보스턴 지교회(Cambridge Community Fellowship Church) 창립예배를 드리다.

 

9월 26-29일

제1회 영어회중 Marriage Seminar를 김원기 목사를 강사로 Jefferson Hotel(리치몬드)에서 갖다.

 

10월 23일

Germantown 대지 구입(170만 달러)을 결정하다.
테잎선교부가 세계선교센터에서 '이 반석 위에 테이프 선교 센터'로 독립하다.

     
1997년

1월 26일

Watkins Mill High School에서 감사와 축제 예배를 드리다.

 

5월 9-10일

제 1차 오이코스 사역자 수양회를 West Virginia Comfort Suites Hotel에서 갖다.

 

5월 30일

창고(1455 Research Blvd.) 건물 매각하다.

 

6월 1일

예배 장소를 Gaithersburg의 Watkins Mill High School로 이전하다.

 

6월 15일

목사(스티브 정, 탐 윤) 안수식을 하다.

 

   

1998년

5월 17일

목사(윤자애), 장로(장윤삼) 안수식을 갖다.

 

10월 18일

고항원, 나용주, 이양호, 정대영, 정평희를 안수집사로 선출하다.

 

   

1999년

1월 1-12일

제 1차 유카탄 단기선교(16명) 파송하다.

 

6월 13일

성전 기공식, 박진용 목사(워싱턴주 타코마 교회 개척) 파송식을 거행하다.

 

11월 21일

집사 안수식(구정서, 김덕규, 남상원, 서정복, 윤일상, 이대훈, 정봉렬, 지용한, 차정주) 및 권사 취임식(나임희, 이인애)을 갖다.

     
2000년

5월 7일

버지니아 오이코스 휄로쉽 교회 창립 예배(김병한 목사)

5월 14일

목사(한내걸, 차영창, 김영수, 알빈 전) 안수식을 하다.

9월 17-20일

제 1기 '사랑하는 사람들' 뜨레스 디아스(여성)를 갖다.

   

2001년

2월 18일

Germantown 건물로 입당하다.

 

4월 15일

헌당예배를 드리다.

 

4월 29일

목사(이인영) 안수식 및 권사(김레지나, 김인옥, 서인숙, 이경숙, 정유수) 취임식을 갖다.

 

5월 6일

영어 회중 장로(김경봉, 김성준) 안수식 및 집사(김점홍, 김해순, 김티나, 원종호, 최재호, Alex Guo, 김기호, 변사라, Ted Spencer) 안수식을 갖다.

 

5월 18-20일

제1회 세계 선교대회를 이재환 선교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을 강사로 갖다.

 

11월 17일

한국어 회중 장로(신수영, 이양호, 정대영, 정평희) 안수식을 갖다. 토요예배를 시작하다.


◈ 2차 성장기(2002-2007)


2001년 4월 15일, 창립 10주년의 결실인 휄로쉽교회 건축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다. 새로운 건물이 아닌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건축에 임했던 이유에 대해 김원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번 뜻을 정하면 사람의 의지는 무섭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처음 우리가 시작했던 교회 건축은 겁도 없이 덤벼들었던 싸움이었습니다. 교회 건물은 '필요 악'이라고 외치면서 건물 없이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매번 남의 건물을 빌린다는 건 너무 불편하고, 그 많은 짐들을 평생 옮겼다 내렸다 하며 사역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했던 건축이 드디어 우리 앞에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매일같이 우리 자신과 싸웠습니다. 절약하기 위해 싸웠고, 아끼고 또 아껴 헌금하기 위해 자신의 욕심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엄청난 축복도 체험했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아마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니 꼭 되도록 만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수십 번도 더 왜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얻은 답은,

첫째는 영혼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인도해야 될 잃어버린 영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불신자들과 이웃을 초청해 인류의 대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안정된 공간의 필요를 절대적으로 느꼈습니다.

둘째, 다음 세대를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뒤에 오는 자녀들을 생각할 때마다 무엇인가 그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마음 놓고 뛰어 놀고 배우며 훈련받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다음 세대에 있습니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여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되어 미국과 세계 역사에 한 몫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는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셋째, 이민 역사를 위해서였습니다.
먼 훗날, 이민 와서 한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적인 업적밖에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좋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돈 벌고 출세하고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았노라고 한다면 그보다 허무한 일이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미국을 처음 찾아왔던 건국 아버지들의 신앙을 배워 우리도 학교를 세웠고, 교회를 세웠노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의 성공보다 더 높고, 더 큰 꿈이 있었노라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넷째, 이민교회 역사를 위해서였습니다.
이민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아픔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그 결과 이런 큰일을 시도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해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우리가 뭉치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고, 아니 하니까 되더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이웃과 사회를 향해 하나가 된 모습으로 웃으며 일하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작은 꿈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휄로쉽교회를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정말 꿈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나날들이 쉬웠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고 보니 꿈같다는 말입니다. 고통스럽고 어려웠던 때도 참 많았습니다. 힘
들어서 중단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참고 견디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와서 보니 잘 왔다 싶습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엡 3:20) 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대를 초월해서 역사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동역자요, 나의 면류관이며, 나의 기쁨인 휄로쉽교회 교인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나의 자랑입니다. 어렵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열심을 다해 힘에 겹도록 충성하신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더 하나님께 헌신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내게 하나님 다음으로 소중한 신앙의 친구들입니다. 오늘 이 헌당식을 통해 저의 기쁨을 같이 나누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002년

1월 11-12일

교회 전략 기획 워크샵을 갖고 2020년 교회 비젼과 사명 선언문을 채택하다.

4월 14일

김원기 목사 저서 "진실이 있는 목회를 하고 싶다" 출판 기념회를 갖다.

5월 5일

구정서/경애 선교사 중국 파송하다.

5월 26-28일

느헤미야 연구소 주최리더쉽 컨퍼런스 김원기 목사를 강사로 갖다.

7월 14일

강성호/명옥 선교사 중국으로 파송하다.

7월 17일

월간잡지 해피데이 워싱턴판 창간 축하식을 하다.

 

11월 10일

VA 캠퍼스(4부 예배) 시작하다.

     

2003년

3월 23일

영어회중 원종호/남연의 부부 및 한국어 회중 박금순 전도사를 Youth With A Mission(YWAM) 선교사로 파송하다.

 

4월 12일

한국어 회중 장로(김덕규, 이대훈) 장립식, 집사(김기영, 김덕수, 김덕원, 김석재, 김일봉, 김종범, 김종수, 박장규, 서정길) 안수식, 권사(김창순, 김성숙, 김정실, 서경화, 신민정, 오정숙, 이경은, 장현순, 지경애, 현임) 취임식을 하다.

 

4월 20일

VA 캠퍼스에서 54명 세례식을 하다.

 

5월 10일

목사(임종혁, 임상진, 진수현) 안수식을 갖고 휴스턴의 Woodlands Christ's Church(진수현 목사)를 지교회로 입양하다.

 

8월 9일

장윤삼/현순 부부를 중국 선교사로 파송하다.

 

9월 2일

Covenant Christian School을 설립하다.

 

12월 12일

'하비스트' 서점을 열다.

     

2004년

2월 24일

제1회 바이블 아카데미(주제: 성경의 일관성)을 김형익 수석 부목사를 강사로 갖다.

 

3월 24일

휄로쉽 시니어 센터를 시작하다.

 

8월 21일

선교 각성 집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김철수 선교사를 강사로 갖다.

 

   
2005년

표어:

"No Turning Back"(뒤돌아 서지 않으리)

 

2월 26일

장로(김명중) 안수식을 갖다.

 

6월 12일

제1회 Fine Arts Festival을 갖다.

 

9월 6일

제1회 중직자 비젼 수련회를 안나산 기도원에서 갖다.

 

   
2006년

표어:

"You Haven't Seen Anything Yet"

 

9월 21일

김원기 목사외 35명이 터어키, 그리이스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10월 15일

제3회 New Life Festival(NLF)를 VA 캠퍼스에서 갖다.

 

   

2007년

1월 14일

장로(장형열) 안수식을 갖다.

 

5월 27일

영어대학부 수양회"Devotion on the Ocean"를 Outer Banks, NC에서 갖다.

 

9월 16일

버지니아 창립 5주년 감사 예배를 갖다.

 

11월 24일

목회자 감사 만찬겸 김원기 목사 목사 안수25주년 기념 만찬을 갖다.

 

11월 25일

목사(김영채, 김학수) 안수식 및 장로(김덕원, 지용한) 안수식을 갖다.


◈ 정착기(2008-2010)

지난 2002년 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교회 지도자 전략 기획 워크숍'이 열렸다. 휄로쉽교회의 사명과 비전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며 교회 사역의 전반적인 전략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샌디코브 수양관에서 가졌던 이 워크숍에서 김원기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 장로 및 기획 팀원들 15명이 모여 다음과 같은 55자의'사명문'을 수립했다.
"휄로쉽교회는 살아있는 예배와 참된 공동체 안에서 열방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또한 휄로쉽교회의 핵심 가치관을 점검하는 시간을 통해 40여 개의 가치관 중'살아있는예배'와'하나님께 의지함' 항목을 우리 교회의 으뜸 가치관으로 삼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어 김원기 목사는 지난 2000년에 발표했던'비전 2020 (5,000의 성도와 500명의 헌신된 평신도 지도자들, 그리고 50명의 소명 받은 사역자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목숨을 바칠 각오와 방해물을 극복할 의지, 그리고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교회 설립 11여 년 만에 처음 갖는 워크숍이었지만 참가자 모두 갓난아이가 아니라 성숙된 모습을 보인 뜻 깊은 자리였으며, 이번 모임을 통해 정리된'휄로쉽교회 핵심 가치관'과'비전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휄로쉽 교회 핵심 가치관

 

2008년

표어:

"Living Dangerously"(위험하게 살라)

 

9월 14일

18주년 창립 예배 및 이사라, 오딜론(멕시코), 김미미 선교사(말레이지아) 파송식을 갖다.

 

11월 9일

장로(김기영) 장립, 안수(오장석, 윤세헌, 전원철) 집사 안수식과 권사(김혜숙, 신연실, 최테레사) 취임식을 갖다.

 

11월 27일

불경기와 시대적인 사명감을 갖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50일간의 성회(Hoy Assembly)를 선포하고 Time of Jubille를 갖다.

 

 

 

2009년

표어:

"Roar Like a Lion"(사자 같이 울어라)

 

2월 23일 김원기 목사외 29명이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4월 19일 목사(조진숙) 안수식을 갖다.

 

11월 8일 장로(김일봉,한기선, Alex Guo, Michael Park) 장립과 안수 집사(강동균, 나희주, 임성호, 정두봉, 이세광, 김성국, Isabella Guo, Sunmi Hammontree, Sunhee Jung, Heather Kwak, Richard Li, Yoonmi Lee, Jewel Na, Jessica Park, David Lee) 안수식을 갖다.
     
2010년

표어: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

  9월 4일 창립20주년 전교인 금식성회("우리가 겸손하여 그의 얼굴을 구하면")를 갖다.
  9월 10일 창립20주년 특별부흥회(3일)("기도하라, 갱신하라, 그리고 다시 찾으라")를 김원기 목사를 강사로 갖다.
  9월 13일 창립20주년 기념 선교사 초청 포럼을 Cancun, Mexico에서 갖다.
  9월 17일 창립20주년 선교대회("선교, 나도 할수 있다")를 갖다.
  11월 7일 안수 집사(김요한, 김인찬, 유진형, 채재진, David Cho, Minjae Chong, Alex Im, Eddie O, John Shin, Mike Chung) 안수식, 권사(김경숙, 김계희, 김묘근, 신성출, 장은주, 조금연) 취임, 장로(정봉열) 장립, 목사(변세라, Dave Chang) 안수식을 갖다.
  11월 13일 한어회중 예배위원 수양회("예배와 섬기는 자")를 버지니아 캠퍼스에서 갖다.
     
2011년

표어:

"Make Big People"(큰사람을 만들라)

  1월 9일 P. Dave Chang외 10명이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1월 14일 한마음 한어 청년부 수련회를 은혜의 동산에서 갖다.
  1월 21일 제 21회 한어회중 신년 금식수양회를 갖다.
  2월 25일 제 21회 영어회중 신년 금식수양회를 갖다.
  3월 9일 재의 수요일 예배(Ash Wed)를 갖다.
  3월 10일 제12차 사순절 특별 새벽부흥회(40일)("하나님을 갈망하라")을 메릴랜드/버지니아 캠퍼스에서 갖다.
  5월 22일 영어회중 대학부 수양회를 Deep Creek Lake, MD에서 갖다.
  6월 17일 P. Mo Kim외 20명이 아프리카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6월 18일 p. Josh외 6명이 중국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6월 19일 P. Danny Chung외 5명 YWAM I, II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6월 26일 김진광 목사외 29명이 에콰도르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6월 26일 P. Brian Lee외 17명 자메이카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6월 26일 Frank Lee외 24명 Group Workcamps 단기선교를 다녀오다.
  7월 22일 P. Sara Pyon외 15명 한국 단기선교(영어캠프)를 다녀오다.
  8월 12일 한마음 한어 청년부 여름 수양회를 은혜의 동산에서 갖다.
  9월 11일 창립 기념 예배 및 목사(Neil Kim) 안수식을 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