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갑옷을 입으라

posted Aug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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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16년 8월 14일
성경 로마서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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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갑옷을 입으라 (8/14/2016)
롬13:11-14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만들고,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게 하는 것은 결국 ‘종말 신앙’이다.      
·‘종말 신앙’이란 이 땅의 삶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아니고, 결국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며, 마지막 순간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평가 받는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인내의 원인

1) 사도 바울도 당시에 이미 종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는 세 가지의 측면이 있다. 먼저는 과거적 측면이다. 이것은 칭의적인 의미의 구원이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일어난다.(엡2:8)
·구원의 현재적 측면이 있다. 이것은 성화적 의미의 구원이다. 칭의적 구원을 얻은 우리는 설사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구원의 은혜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은혜를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답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빌2:12)
·마지막으로 미래적 의미의 구원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이다.(11절)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이 땅을 심판하심으로 구원 얻은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주어지게 하실 것이다.(히12:26,27)
·그러나 바울이 말한 미래적 의미의 구원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주님이 금방 오셔서 그 나라를 이루실 것처럼 말했던 이유는 그 만큼 종말에 대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함을 말한 것이다.
·사실 종말의 때가 금방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먼저 죽음을 맞이함으로 개인적인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더더욱 그렇다. 

2) 오늘이라도 우리에게 종말이 임할 것 처럼 사는 것은 결국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하게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원하시고 또 그렇게 이루어 가시는 것이 바로 성결의 삶이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그들이 거룩해지기를 기도하는데, 여기서의 ‘거룩’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이 실존적으로 거룩케 되는 ‘성화적인 의미의 거룩’을 말한다.(요17:16,17)
·사실 오늘도 우리의 삶에 어려운 시간들이 오는 이유도 성결을 주님께서 이루시려고 주신 것들이다.(히12:9-11)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세상 사람들 보다는 더 거룩하게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목표는 그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일으키는 영적인 파도를 올라탈 수 있는 자는 성결한 자
·오늘 우리의 삶에 억울한 소리.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내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일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더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더 성결하라는 것이다. 더 겸손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설 수 있다.
·본문에 사도 바울도 우리가 결국 살아야 할 성결의 삶을 세상의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그것이 12절에 ‘어둠의 일’이고 13절에 나오는 ‘방탕과 술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절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 종말 의식을 가지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항상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 마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을 바울은 13절의 말씀과 같이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단정’이라는 말은 ‘끝 단’, ‘바를 정’자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바르다’는 뜻이다. 처음에만 바르고 나중에는 대충 대충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이 바른 것을 말한다.

3) 단정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씀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먼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주신 칭의의 옷을 계속 입고 있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육체의 본성이 남아 있어서 어떨 때는 육체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는 여전히 더러운 때가 있지만 예수님이 입혀주신 칭의의 옷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말이다.(갈3:26,27)
·또 하나의 의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무장하라는 말이다. 사실 성결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덧입혀 질 때 성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어거스틴의 삶의 변화를 주신 하나님

학습 및 적용 문제:
1)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세가지 측면을 설명해보라.
2) 미래적 의미의 구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마땅한 삶을 오늘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3) 성결의 삶을 위해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말해보자.

 


빛의 갑옷을 입으라 (8/14/2016)
롬13:11-14

·우리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만들고,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게 하는 것은 결국 ‘종말 신앙’이다.      
·‘종말 신앙’이란 이 땅의 삶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아니고, 결국 이 땅에서의 삶은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며, 마지막 순간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평가 받는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인내의 원인

1) 사도 바울도 당시에 이미 종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는 세 가지의 측면이 있다. 먼저는 과거적 측면이다. 이것은 칭의적인 의미의 구원이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일어난다.(엡2:8)
·구원의 현재적 측면이 있다. 이것은 성화적 의미의 구원이다. 칭의적 구원을 얻은 우리는 설사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구원의 은혜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구원의 은혜를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답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다.(빌2:12)
·마지막으로 미래적 의미의 구원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이다.(11절)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이 땅을 심판하심으로 구원 얻은 백성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주어지게 하실 것이다.(히12:26,27)
·그러나 바울이 말한 미래적 의미의 구원은 지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주님이 금방 오셔서 그 나라를 이루실 것처럼 말했던 이유는 그 만큼 종말에 대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함을 말한 것이다.
·사실 종말의 때가 금방 이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먼저 죽음을 맞이함으로 개인적인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더더욱 그렇다. 

2) 오늘이라도 우리에게 종말이 임할 것 처럼 사는 것은 결국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하게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원하시고 또 그렇게 이루어 가시는 것이 바로 성결의 삶이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그들이 거룩해지기를 기도하는데, 여기서의 ‘거룩’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이 실존적으로 거룩케 되는 ‘성화적인 의미의 거룩’을 말한다.(요17:16,17)
·사실 오늘도 우리의 삶에 어려운 시간들이 오는 이유도 성결을 주님께서 이루시려고 주신 것들이다.(히12:9-11)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세상 사람들 보다는 더 거룩하게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목표는 그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일으키는 영적인 파도를 올라탈 수 있는 자는 성결한 자
·오늘 우리의 삶에 억울한 소리.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내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일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더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더 성결하라는 것이다. 더 겸손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로 설 수 있다.
·본문에 사도 바울도 우리가 결국 살아야 할 성결의 삶을 세상의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설명한다. 그것이 12절에 ‘어둠의 일’이고 13절에 나오는 ‘방탕과 술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4절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 종말 의식을 가지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항상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 마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을 바울은 13절의 말씀과 같이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단정’이라는 말은 ‘끝 단’, ‘바를 정’자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바르다’는 뜻이다. 처음에만 바르고 나중에는 대충 대충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이 바른 것을 말한다.

3) 단정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씀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먼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입혀주신 칭의의 옷을 계속 입고 있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육체의 본성이 남아 있어서 어떨 때는 육체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는 여전히 더러운 때가 있지만 예수님이 입혀주신 칭의의 옷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의인으로 인정된다는 말이다.(갈3:26,27)
·또 하나의 의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무장하라는 말이다. 사실 성결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덧입혀 질 때 성결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어거스틴의 삶의 변화를 주신 하나님

학습 및 적용 문제:
1)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세가지 측면을 설명해보라.
2) 미래적 의미의 구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성도들의 마땅한 삶을 오늘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3) 성결의 삶을 위해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