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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교회 목회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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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마음의 격동을 일으키고, 때로는 한없이 눈물짓게 했던 그리고 때로는 어찌할 줄 몰라 그저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며 기도했던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너무도 훌륭하게 잘 지내 오셨습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잘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담 치유나 내적 치유를 말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과거와 잘 이별하는 것입니다. 과거와 잘 이별하면 새로운 시작이 진정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지만,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새로운 시작은 이전의 잘못을 또다시 반복할 뿐 아니라, 과거 자신의 위치와 하던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이전의 아픔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해 아이 같은 어른의 수준에 머무르며 비슷한 문제나 환경이 발생하면 가슴 아픈 실수들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래서 과거와 잘 이별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지나간 과거는 참고사항이지만 새로운 미래는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할 새 건물’이라고도 합니다. 길을 바꾸었으면 그 길을 가는 방법도 바꾸어야 한다 합니다. 포장된 길을 갈 때와 자갈길을 갈 때가 다른 것처럼 마음의 자세와 정신상태를 바꾸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마음의 아픔을 가진 분들은 상담해 주는 사람이나 가족 혹은 주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상대방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결해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근원적인 아픔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안다고 해도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치료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결단과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성경을 보면 믿음의 영웅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25년, 요셉은 약 14년, 모세는 40년, 다윗도 약 14년… 혹독한 시험과 시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아무도 하루아침에 영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똑같은 실수를 거듭해서 반복하곤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까 싶을 정도의 오판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나도 그런 사람인데…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성경에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때로는 마음을 편하게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더 굳세어지고, 더 하나님을 소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크신 일에 쓰임 받는 위대한 보통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가난한 자를 들어 부한 자들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거울과 같이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요(고전10:11). 이제 2013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 잘 이별하시고 2014년 새해를 소망 가운데 새로움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3년 12월 29일
양경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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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탄 주일입니다. 그리고 김대영 목사님을 담임목사로 청빙할 것인지에 대한 공동의회가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칼럼을 쓸까 했지만, 제 마음에는 더 급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영적으로 마른 시체처럼 되어 버립니다. 이름은 그리스도인이요, 생활도 그리스도인 것 같지만,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셨던 예수님도 밤새 기도하시고 때마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시고 고통스러울 때에는 피를 흘려가며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였고, 사도 바울도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정도 되는 분들 같으면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더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기도하지 못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 때문에, 그래서 육아 때문에 피곤하고 직장 때문에 피곤하니까 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혼자 기도가 안 되니 기도의 자리에 나오라고 해도 아이들 데리고 나오기가 힘들어서, 아이들 취침시간 때문에, 또는 아이들 공부 때문에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의 아내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 저희 부부의 큰 고민 중에 하나는 어떻게 기도시간을 유지하고 또한 영성을 유지할 것인가였습니다. 특별히 육아 때문에 아내는 그런 기회를 많이 놓쳐서 속상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았습니다. 아무튼, 당분간 한 사람은 희생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가 기도하러 많이 갔었습니다. 요즘에는 부부가 교대로 새벽기도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 갈 때가 되면, 한 사람은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한 사람은 집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부 중에 한 사람도 안 되느냐는 말입니다. 아이들 때문이라면, 기도하는 그 한 시간을 부부 중에 한 사람이 감당 못 하고 두 사람이 다 같이 봐야 할 정도인가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하는 부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면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후자라면 영적 위기입니다. 큰 위기입니다.
어떤 중요한 일이 있는데 부부가 다 참석을 못 하게 되면, “여보! 당신이라도 갔다 와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핍박받는 성도와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공동체적으로 기도하는 일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로 중요합니까? “여보! 당신이라도 다녀와야겠어요!” 할 정도로 중요하십니까?
오늘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요기도회 나오시는 분들이 평소에도 기도를 잘하실까요? 아니면 수요기도회 안 나오시는 분들이 평소에 기도를 잘하실까요? 토요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들이 평소에 기도 생활을 잘 유지하실까요? 안 나오시는 분들이 잘 유지하실까요?
기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3년 12월 22일
김진광 목사



2013.12.15 11:54

조심 vs.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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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에 청년부와 나누었던 것인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청년부 설교준비를 하다가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의하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주의하라,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저희가 살아야 하니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주님의 명령이 당연합니다.
예전에 한국에 방문할 때에, 아들 목사가 온다고 저희 어머니가 한국의 여러 교회에 설교 일정을 잡아 놓으셨습니다. 저는 쉬러 갔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잡아 놓으셨습니다. 설교도 설교였지만, 설교 전에 방문하는 교회의 리더들과 만나서 식사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시차 적응도 안 되었는데, 졸린 것을 참으면서 어려운(=익숙하지 않은) 분들과 식사하는데, 무슨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해서 긴장하고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피곤해졌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총을 처음 쏘게 될 때에 총기사고는 생명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조심하라고 훈련병들에게 얼마나 호되게 벌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 훈련병들은 긴장합니다. 사격장에 무슨 옆집 햄버거 가게 가는 것처럼 편하게 가는 훈련병은 없을 것입니다. 조심하고 주의한다고 할 때에 우리는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런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은 평안하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설교준비를 하는데, 이 두 가지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조심하려면 평안이 없어지고, 평안하려면 조심하는 것이 없어져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어떻게 이 두 가지가 만족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셨는데요, 그것은 예수님과 가깝게 지낼 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만족이 되고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워지면 영적인 예민함이 생깁니다. 또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소원이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니 저절로 주의하게 되고 조심하게 됩니다. 주의하고 조심하는 일이 훨씬 쉬워져서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친밀한 관계 속에서 확신하게 되니, 또한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게 되니 염려하지 않고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구원받은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이제 연말입니다. 날씨도 겨울답게 더 추워졌습니다. 이래저래 저희에게 예수님을 그렇게 찾지 않아도 될 핑계들이 더 많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즐거워하는 시즌이지만, 오히려 저희는 세상의 것들로 예수님과 더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 연말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가까이 오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저희가 이 음성에 순종하여 이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도 성령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3년 12월 15일
김진광 목사

  • ?
    CalebPark 2013.12.17 10:44
    주께서 목사님께 주신 깨우침에 환호를 보냅니다.
    예수님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지요.. 오늘도 예수님을 사모합니다. 간절히...

2013.12.15 11:53

생명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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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까지만 해도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보면서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곤 했는데 벌써 차가운 겨울의 한복판에 와 있음을 매일의 추위를 통해 절감합니다. 개인적으론 따뜻한 계절을 더 좋아하지만, 겨울이 겨울 다와야 더 사계절의 운치도 있고, 계절의 영향을 받는 동식물에도 더 좋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추운 겨울도 감사할 뿐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움직입니다. 아무리 작은 세포라도 살아 있다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살아있기에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며, 삶의 결정체인 열매나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의 전달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죽어버린 것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시체에 아무리 좋은 약을 먹이고 충격을 주고 갖은 노력을 한다 해도 이미 죽어버린 몸은 움직이지 않고, 고통도 모르고, 아픔도 느끼지 않습니다.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딱한 고목 나무에서는 파릇파릇한 봄의 새싹이 나오지 않습니다. 새싹은 부드러운 가지와 부드러운 줄기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도 두 가지 방향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사람과 점점 부드러워져 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는 방향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간다면 얼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더는 딱딱한 고목나무 껍질과 같이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선 그렇게 자랑스럽게 붙들고 있던 아름다운 나뭇잎들을 버려야만 합니다. 버리지 않으면 어차피 차가운 날씨에 잎들은 얼어서 죽을 것이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그 눈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꺾여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에 있어서 겨울이 오기 전 나뭇잎들을 모두 떨어 버리는 것은 어쩌면 숙명이고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 후엔 따뜻한 봄의 기운을 타고 일어나는 새로운 싹이 살아있음을 증명해 줍니다.
어려운 시기,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에스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말씀을 중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도 표어를 ‘새 마음과 새 영으로’라고 목회실에서 정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부드러운 마음을 갖도록 기도하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 이전의 모든 아픔이 치유되고 강건해져서 이전보다 더 하나님의 부여하신 사명을 위해 매진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출발을 목전에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하는 나무와 같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떨어버려야 할 이전의 나뭇잎들과 가지들이 남아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2013년 12월 15일
양경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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