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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휄로쉽 교회

ncfc5.jpg청년 시절 나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성경에 나오는대로 교회를 해보고 싶었다. 건방진 의미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순진한 마음에서 그랬다. 젊은 내가 보기에 그 당시 교회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성경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세속적이라고 느꼈다. 말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교회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세상하고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실망했고 그러다 심해지면 깊은 회의에 빠져 좌절했다. 차라리 교회를 떠나 무교회주의자가 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교회를 떠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꿈을 꾸었다. 성경적인 교회에 대해서. 대학교 4학년 때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 나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기독교는 물론 교회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예수를 믿고 나니 교회에 대해 큰 기대를 갖게 됐다. 나는 교회에서 성장하지도 않았고, 성경도 몰랐기에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도 몰랐다. 다만 좋은 교회는 세상의 그 어느 집단보다 좋을 거라는 것만 알았고 세상에 있는 그 어느 단체보다 더 똘똘 뭉쳐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을 힘차게 감당 하는 공동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다 깨지고 말았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교회에 다닌지 일년도 채 못되어 내가 다니던 교회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 과정 중에 일반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흉하게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무슨 다른 저의나 원하는 것이 있어 교회를 다닌 사람 들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는 어른들은 물론 그 싸움에 같이 참여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비방하고 공격하며 이간질하는 교인들의 모습에서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순진하기만 했던 나의 교회에 대한 꿈은 무너지고 갑자기 교회에 대한 배신감과 회의를 느꼈다.
교회가 싫어졌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싫었고, 싸우는 교인들을 보는 것이 싫었고, 뻔뻔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이간질하는 것을 보는 것도 싫었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지겨웠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교회를 멀리했다. 교회를 아주 떠난 것은 아니지만 교회란 가까이 할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교인들도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믿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이나 저의가 있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지 순수한 동기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ncfc5-1.jpg
이런 와중에도 하나님은 나에게 소명을 주셨고 결국 하나님께 등이 떠밀리다시피 해서 신학교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목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회만은 피하려고 하나님과 끈질기게 싸웠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이기셨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원하지 않는 목회를 하기 위해 기성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다. 부임하면서 나는 한 3년 목회 경험을 쌓은 후 다른 일을 하리라고 혼자 굳게 다짐했다. 목회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을뿐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3년만 부목사로 섬긴 후, 신학교 교수를 하든지 선교 기관에서 일을 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부목사로 부임한 지 두 달만에 깨지고 말았다. 나를 부목사로 초청했던 담임목사가 가족들을 데리고 문자 그대로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9개월 동안 그 교회 담임목사 대행을 하다가 교인들의 요청으로 28살의 나이에 그 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었고, 그렇게도 하기 싫다는 이민목회였는데 하나님은 거의 강제로 시키셨다. 타의로 시작했으니 나에게는 목회가 너무나 벅찼다. 너무 어리다고 '어린 종'이란 별명을 들어가면서 속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고생을 했다.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애틋한 자기연민에 빠진다. 얼마나 힘들어하고, 얼마나 울부짖고, 외로워 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내가 섬기던 '워싱톤 한인 침례교회'는 미주 한인 침례교회로는 전 미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로 26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올해가 그 교회 창립 54주년이다.) 내가 부임할 때 이미 자체 건물을 소유했고, 출석 교인이 500명이 넘는, 워싱턴에서는 대표적인 대형 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교회들이 그 당시 가지고 있던 거의 체질화된 문제를 그대로 지닌 교회였다. 26년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갈라졌다. 나는 그런 교회에 부임했고,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8년 동안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교회는 꾸준히 성장했다. 출석 교인이 1,200명에 달했고, 교회 부지를 넓히는 등 주위에서는 잘 나가는 목사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 아내는 그 교회를 사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 교회를 사임한 지 9개월 만에 휄로쉽교회를 세우게 됐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도 목회를 하지 않겠다던 내가 8년 동안 그 무시무시한 훈련을 받으며 목회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꿈꾸게 되었다. 왜 이 시대에는 이다지도 성경적인 교회를 보기가 힘드느냐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 의문이 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적인 교회란 신학적인이나 교리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신학적으로는 성경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게 사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신약성경에 보이는 대로 사는 교회와 교인들,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교회, 그런 교회를 보고 싶었다. 그런 교회를 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
는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그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사람에게 투자하고 사람을 키우는 교회,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
라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교회, 경건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이끄는 교회, 교회의 사명과 목적 그리고 핵심가치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수평이동이 아니라 전도로 성장하는 교회, 분쟁이나 싸움이 없이 사랑과 웃음이 가득한 교회, 차세대를 세우는 교회,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교회, 주위 교회들과 선의에 서라도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교회들을 세워주고 섬기는 교회가
되고 싶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 본다.

첫째, 20년 동안 우리 교회는 규모에 비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키웠다.
  ncfc5-2.jpg교회를 개척했던 창립 멤버 15명 가운데 그 당시 여대생이었던 영어 회중의 티나 신(Tina Shin Kim) 집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목회와 선교 일선으로 나갔다. 김숭봉/영선 부부는 필리핀 선교사로, 이다윗/안나 부부는 중국 선교사로, 장요셉/헬렌 부부는 중국 선교사로, 김우성/명숙 부부는 목사로, 이미 목사였던 박진용/명순 부부도 목사로, 황광철/동욱(Charlie/
Dong Whang) 부부는 목사로, 그 당시 미혼이였던 나승찬(Soong-Chan Rah)은 우리가 제일 처음 개척한 보스턴의 'Cambridge Community Fellowship Church'의 담임 목사로, 정대성(Steve Chong)도 목사가 되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목회와 선교 헌신자는 이미 50명이 넘었고, 지금도 약 30여 명이 준비 중이다. 사람을 키우겠다는 우리의 큰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20년 동안 우리는 선교했다.
기도나 재정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출신 선교사를 키워 내겠다는 의지로 내가 은퇴할 때까지 10 가정을 파송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목표를 세우고 기도했는데 이미 10 가정이 넘었고, 이제는 30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이상이다.


셋째, 1세와 2세, 곧 한어 회중과 영어 회중이 하나가 되게 했다.

모든 이민교회의 1세와 2세들은 사연도 많고 갈등도 많다. 그들이 만약 서로 돕고 섬긴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시너지를 가지고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내가 알고 있는 4,000개의 미주 한인 교회 중 우리 교회만큼 성숙하게 두 회중이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가 되어 일하는 교회는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 교회로 한 당회 밑에서 하나가 되어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갈등이나 불화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넷째, 장기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검증된 지도자를 세우기 원했다.

목사든지 평신도 지도자든지 모두가 만족할 만큼 완벽하고 성숙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 지도자들도 부족한 점이 얼마든 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성경적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애썼다. 성경에 나오는 기준을 지키려 했고, 성경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리 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교인들 간에 또는 담임목사와 장로들 간에 긴장이나 갈등을 경험하지 않았다. 당회에서 의견 대립으로 불화한 적도 없었고, 제직회나 공동의회에서 안건을 처리하면서 교인들의 반응에 대해 불안해한 적도 없다. 공동의회가 끝나면 참석한 모든 교인들이 함께 순대국을 먹으러 가는 전통이 있는 교회는 온 세상에 아마 우리 교회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매년 10월 공동의회가 끝나면 모두 음식점으로 몰려가 저녁식사를 하며 뒤풀이를 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어느 해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것이 이젠 우리의 전통이 된 것이다. 예/결산이 끝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교인들, 장로/집사/권사를 선출하고 축하해주기 위해서 음식점으로 몰려가는 교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난 왜 그렇게도 행복한지 모른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장로를 선출한다면서 교인을 긴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처럼 교인들이 만족해 하며 즐거워하는 교회를 해보고 싶었다. 검증된 리더를 세우려 하다 보니 우리 교회에서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 교회의 안수집사나 장로는 다 우리 교회 출신이지, 다른 교회에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처음부터 이 문턱은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다. 초창기에 일꾼이 한창 필요할 때 다른 교회에서 좋은 장로나 집사가 나타나면 왜 욕심이 생기지 않았겠나? 욕심도 나고 붙들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원칙을 지켰다. 우리 교회는 예외 없이,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최소한 7년이 지나야 장로 추천을 받을 수 있다. 등록과정이 일 년 정도 걸리므로 아무리 최고속으로 추천을 받아도 8년이 걸린다. 그러니 외부에서 온 장로가 그 기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검증된 리더십을 위해서는 적어도 그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함께 섬기는 장로가 16명인데, 그 중에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사람 중 28년 이상 된 분이 6명, 17년 이상 된 분이 8명, 15년 이상 된 분이 2명이다. 대부분이 젊은 시절부터 교회에 대한 같은 꿈을 꾸며 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고 존중한다. 얼마 전 다른 교회에서 나에게 그 교회로 부임할 의사가 없는지 타진해 온 적이 있었다. 거절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이유가 우리 교회에서 내가 즐기는 장로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어디에 가서, 어느 세월에 다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당회와 담임목사가 늘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그 아름다운 관계를 어디 서 다시 만들어 내겠는가? 이것이 초대 교회의 모습 아니었나?
만약 초청한 그 교회가 우리 교회보다 어려운 교회였다면 내 생각이 달랐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 교회보다 더 큰 교회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 규모는 더 클지 몰라도 한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내는 기동력과 추진력, 그리고 측정할 수 없는 행복도와 만족감은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회에 있는 교인들은 나의 드림팀이다. 나와 가장 뜻이 같고 마음이 같고 비전이 같다. 그 누구와도, 그 어느 교회와도 바꿀 생각이 없다.


다섯째, 차세대를 키우고 싶었다.

ncfc5-3.jpg형식적으로 또는 말로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을 키우듯이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었다. 다른 교역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키우고 싶었다. 물론 내 주위에는 항상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역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2-3년 정도 경험을 쌓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면 떠난다. 그래서 중고등부든지, 대학부든지, 학생들에게는 항상 목회자들에 대해 상처와 불신이 있다. 나는 그들의 불신과 상처를 없애고 싶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아비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중고등부, 대학부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 예배도 함께 참석하게 만들어 6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장년 예배에 참석해 내 설교를 듣고 자란다. 이들을 위한 특별행사가 있으면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수양회도 같이 간다. 기도회도 같이 한다. 식사도 같이 하고, 같이 놀러도 간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집하고 살았다. 2,30년을 그렇게 했더니 이제는 정말 그들이 내 자식이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른다. 나와 함께 꿈을 꾸고 같이 뒹굴며 지낸다. 지금도 매년 나는 고등학교 11학년, 12학년 학생들을 직접 제자훈련 시킨다. 대학생들도 내가 직접 키운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고 부모의 뒤를 이어 장래의 지도자로 잘 커간다. 일반 교회가 소유하지 못한 큰 자원이다. 일반교회는 자녀들이 대학교를 가거나, 사회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통계를 보면 걱정스럽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다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한다. 교회가 좋아서 그런다고 한다. 그냥 사회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영적인 면에서 교회를 좋아한다. 대학교를 가도 지속적으로 섬기고 배울 수 있는, 그리고 자신들을 키워주는 교회가 좋은 것이다.
교회 초창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80 % 이상을 대학 진학하면서 잃은 것 같다. 다른 주 에 있는 대학교를 지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추세는 정 반대이다. 아주 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80 % 이상이 이 지역에 남는다. 물론 워싱턴 근교에 좋은 대학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좋은 대학 소위 세상이 말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이 되어도 교회가 좋아서 굳이 이 지역에 남는 아이들도 꽤 된다. 나는 이렇게 내가 키운 아이들이 우리 교회를 좋아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마치 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목사인 아버지를 기쁘게 하듯. 나는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라고생각한다.
바울을 바라보던 디모데가 바울처럼 되었듯이, 베드로를 바라보던 마가 요한이 베드로처럼 되었듯이, 휄로쉽교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휄로쉽교회처럼 되는것이 너무 행복하다.
20년 전 어렸던 아이들이 자라 이젠 30대, 40대의 일꾼이 되었다. 자신들이 자란 교회를 사랑하며 부모에게 보고 배운 대로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 또 앞으로 그렇게 되기 위하여 훈련받고 있는 10대와 20대를 지켜 보면서 나는 외친다. "우리에게 아직 꿈은 살아있다!"고. 요즘은 우리가 키운 우리 자식들을 훈련시키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교회에 대한 불만이나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건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을 고마워하며 자신들도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는 그런 차세대를 세우고 싶었다. 소위 '신앙생활' 인이 아니라 '생활신앙'인으로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부모가 되고 그래서 우리보다 더 경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을 키워보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소원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점점 선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함을 세상의 그 무엇과 바꾸랴! 얼마 전 영어 회중의 남성 수양회에 참석했었다. 기도하는 시간에 자기 아버지를 위해 어깨동무를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아들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환희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부모들은 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 얼마나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가? 얼마나 마음 졸이며 애태웠던가?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의 동지가 있는 것을 감사하며 서로를 위해 울며 기도하지 않았던가? 바쁜 인생의 중년기를 지나면서도 우리의 출세를 위해 자녀들을 희생시키지 말자고 서로 도전하며 격려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소리를 죽여가며 조심조심 살았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우리는 목회자로, 또는 직업인으로, 또는 전문가로 얼마간 손해를 봤는지 모르지만 자식 농사에는 일 원도 손해 보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넘치게 채워주셨다. 오늘도 우리 교회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저들의 기도 소리가 바로 그 증거 아닌가?

여섯째, 우리는 변화에 익숙한 교회였다.
ncfc5-4.jpg목회 초기에 전통이 오래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좋은 전통도 잘못하면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자는 결의로 교회를 시작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부대를 바꿔 갈 것을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했다. 본질적인 것은 무슨 수가 있더라도 지키지만 비본질적인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바꿀 수 있을 만큼 유연했다. 구역모임인 '사랑의 방'도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연령별로 모이는 '장년 성경공부(ABF, Adult Bible Fellowship)'로 바꿨다. 장년 성경공부가 비효과적이 되자 '셀 교회'인'오이코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서슴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즉 교인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소그룹이 있어야 한다는 본질 말이다. 그래서 그 이상을 담는 부대는 시대와 필요에 따라 바뀌었지만 자신들의 삶을 나누는 훈련은 지속될 수 있었다. 건물에 대한 생각 역시 유연했으며, 철저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원칙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건물의 필요성을 최소화했다. 건물이 교회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교회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학교 건물을 빌려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600 만 불의 건물을 구입하는 과정도 거쳤고, 그 후 다시 그 건물을 팔고 또 학교 건물을 빌려사용했다. 그러다 건축을 했고, 다른 교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지역 캠퍼스(Satellite campus, 한 지 붕 아래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표현 하는 것)'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일반 교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급격한 변화들이었지만 우리 교인들은 늘 유연하게 이런 변화에 적응했다. 그 이유는 교인들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위해서 비본질적인 변화는 얼마든지 수용할 성숙함과 기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젊은 교회였다. 개척했을 때 나는 35세였고 같이 시작한 사람들도 대부분 어렸거나 젊은 편이었다. 그 당시 제일 나이드신 분이 지금의 장요셉 선교사님이셨는데, 장 선교사님이 그때 46세였으니 얼마나 젊은 교회였는가? 하지만 우리는 장 선교사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따랐는지 모른다. 물론 장 선교사님이 모든 면에서 지혜롭고 성숙한 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46세는 젊은 나이인데 그때 그분을 그렇게 어른 취급 하고 따랐으니 우리 교회가 얼마나 젊은 교회였는지 짐작이 가리라.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게 젊던 사람들이 이젠 나이를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목회 철학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즉 교회에는 나이든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젊은 리더십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이든 리더십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교회를 섬기고 젊은이들을 키우지만 교회의 장기적인 계획은 추진력이 있는 젊은 리더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평생직이었던 장로 체제를 6년 단임제로 바꿨다. 교회의 살림을 맡아 보는 결정권을 가진 당회의 시무장로는 6년만 하고 물러나게 되어 있다. 그후에는 시무장로가 아닌 사역장로로 실질적인 사역에 힘쓰게 된다. 이것도 하던 중간에 당회의 결의로 갑자기 바꾼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반대나 불평없이 합의해 결정했다. 그래서 일찍 장로가 되었던 분들은 50세를 전후해서 다 물러났다. 아마 이런 교회가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16명의 장로가 있는데 그 중에 3명이 40대, 12명이 50대, 1명이 60대이다. 시무장로는 9명인데 2명이 40대 초반, 5명이 50대 초반, 1명이 50대 후반, 1명이 60대이다. 이만하면 당회가 얼마나 젊은지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젊은 시무장로는 계속해서 양산될 것이고 그들이 교회를 이끌고 나갈 것이다.


일곱 번째, 우리 교회도 이제 20년이 되다 보니 20년 된 교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대부분 좋은 냄새다. 그 중 하나가 나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한 것이 2,30년 이상 되는 교인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초창기 멤버들 중에는 나와 인연을 맺은 지 35년 이상 되는 분들도 있다. 14년 후 내가 은퇴할 때가 되면 4,50년 동안 나와 함께 교회를 섬겨온 분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건 보통 자산이 아니다. 한 울타리에서 한솥밥 먹으며 한 길을 달려온 우리들. 세상에 부러울 것 없고, 세상에 무서울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10년간 창의적인 실버 사역을 계획 중이다. 그리고 그 준비 작업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시작됐다. 인생의 절정을 의미하는 '프라임 타임(Prime Time)'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이미 현대 교회들은 은퇴는 했지만 능력이 있는 60대 이상의 '젊은' 노인들로 가득하다. 앞으로는 그 인구가 엄청나게 더 증가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민 교회의 성격이나 형편상 노인층들은 '효도'나 받는 세대로 취급받았다. 사실 많은 이민 교회에 출석하는 노인들은 자식들의 초청으로 나이 들어 미국에 왔기 때문에 올 때부터 이미 은퇴를 했거나 온 지 얼마 안되어 은퇴한 분들이다. 그래서 별다른 은퇴 계획도 없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어려운 형편에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이민 교회들은 이분들을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섬긴다. 우리 교회도 그런 사역들이 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있으면 약간 다른 색깔의 노인층이 형성된다. 그것은 미국 생활을 한지 꽤 되는 노인들이다. 이들은 이미 영어에 능숙하고, 미국 생활에도 익숙하여 여생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는 분들이다. 교회에서도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분들이다. 생활 일선에서 물러 났기 때문에 단기선교나 중,장기선교에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를 섬기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노인들을 바쁜 젊은이들에게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여유가있고 그들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같은 세대 사람들이 그들을 돌보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이 프라임 타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우리 교회에서 한 세대를 같이 섬긴 나의 드림 팀과 이런 은퇴를 즐기는 세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간혹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우리 세대는 절대로 조용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당회나 교회 살림을 놓지 못해 시끄럽게 하는 역기능적인 노인 세대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 살림처럼 골치 아픈 일은 일찌감치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시끄럽게 하다 간다는 뜻이다. 노인들의 기도 소리로 요란한 교회, 노인들의 찬양 소리로 요란한 교회, 노인들의 활기찬 섬김과 돌봄으로 요란한 교회가 될 것이다. 새로운 10년, 20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꿈을 꿔야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 일을 잘 마쳐야겠다. 하지만 마친다는 것은 끝낸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는 것이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그 다음 세대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처음 가졌던 소박했던 꿈, 즉 성경대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교회를 세우고 싶은 마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20년을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다음 20년도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다. 오늘은 10년 전 세운 비전 2020를 다시 확인한다. 2020년이 되려면 아직 10년이 남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아직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기도하며 달려가야 하겠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 전에 또 비전 2030, 비전 2040을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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