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SCROLL TO TOP

2019.02.07 20:02

놀랄 세가지 사실

조회 수 17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님 앞에 섰을때 놀라는 세 가지 일이라 누군가 말하더군요.

 

1. 도저히 천국에 가지 못하리라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갈 때.

2. 당연히 천국에 가리라 생각한 사람이 천국에 못 갈때

3. 천국에 당연히 들어가리라 생각 한 자신이 천국에 못 갈때

 

참 의미있는 생각 아닙니까? 우리는 사람을 외모와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 판단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여 천국 시민이 됩니다. 이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은 불변의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복음이고 우리는 이 복음을 세상에 담대히 선포하고 또 우리의 삶을 통하여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섰을때 천국에 들어 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사람들이신가요? 혹시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얻는 살아있는 믿음이 아닌 혹 죽은 믿음이 아닌가 자신을 심각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 확증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좁은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행함보다는 순종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만. ..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야고보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경고의 말로 쓰신 것입니다. 야고보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고 계신는 겁니까? 여러분 사영리를 통하여 전도해 보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거기 마지막에 결신의 기도를 따라 하라고 하면서 기도후 당신은 이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며 앞으로 온전한 신앙 생활을 가까운 교회로 가서 하라고 인도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온전한 믿음이라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 입술의 고백대로 주님께 삶을 맡기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여 결단하고 교회를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입술의 시인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 단순히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지..의 의 과정을 거친 완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공감하고 마음에 그리 살고자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믿음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말합니다. 교회에는 기독교인이 많은데 세상에서는 없다고 합니다. 왜 이러한 말을 들어야 할까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활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음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열심히 성수주일하고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모여 기도도 하지만 교회당만 떠나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와 행동을 하며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또 “여호와 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 15:22) 라고 하셨고 왜 예수님께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12:7) 또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성경은 믿는자를 책망하는 예가 많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아겠죠. 이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말씀대로 순종 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 책망 받은 믿는 자 였습니다. 또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 비유 역시 믿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순종함 없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쫓겨나는 어리석은 믿는 자였습니다. 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음으로 책망을 받은 자들 역시 믿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씨 떨어지는 비유 역시 순종하여 결실을 맺는 자인지 순종치 않음으로 사는, 믿는 자에게 하는 비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 과연 내가 믿는 자들을 보겠느냐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믿음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고 말씀하고 계신 믿음인가 자신의 살펴보라는 경고의 말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리 대답 했습니다. “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12:33) 그러나 이들은 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있음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당시 메시아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나는지 당시의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즉 말씀은 알고 있었지만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 인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아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올바르고 살아 있는 구원얻는 믿음인 것입니다.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귀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다 압니다. 근데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아무런 마음에 순종이 없습니다. 그저 성수주일 하고 헌금내고 봉사조금 하면 성도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자기 만족에 빠져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있는 줄 아는 사람이 생각외로 많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을 바꿀수 있는 믿는 자들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 해 보게 합니다. 믿음이란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아는 것을 순종함으로 행할때 비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서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은 반드시 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입술의 고백이 가운데 순종이 필요 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시인을 그저 입술의 고백으로 생각하며 십자가의 강도의 고백을 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다고 그저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럼 강도의 마음 상태를 살펴봅시다. 그는 어렴풋이 예수님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구원자 메시아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작정을 합니다. 이 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구나. 그래서 의지를 통해 행함의 결단을 합니다. 주여 오늘 주의 나라에 임하시거든 저를 기억하소서로 입술의 고백으로 자신의 믿음에 대한 행함을 말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입술의 고백은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일 인것입니다. 요즘 처럼 그저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닌것이죠. 당시는 죽는 것을 각오하고 에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주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의 결과로 시인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수 있나요. 예수님을 위해 손해도 보고 절제도 하고 세상의 기준과 법을 뛰어 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바로 이러한 삶이 현 시대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 교회가 복음을 위해 입술의 고백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는 선포는 어떤 의미에서는 성경을 오해 한 것이고 과대 평가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회개를 통한 입술의 고백이 아닌 그저 후회만 하는 ‘회’만하고 태도를 바꾸는 ‘개’는 안하며 신앙 생활을 하니 천만명 기독교인이라는 저희 조국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온전한 회개는 삶이 180도 변하여 합니다. 삶의 변화의 열매는 없이 죄에 대해 후회만 하고 또 그 일에 대해 변하고자 하지 않고 있으니 삶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합니다. 결국 교회에만 기독교인이 있지 않은가 이곳에 사는 저희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저는 완전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며 주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이들도 어떤이는 좀 성장이 빠르고 어떤이는 성장이 느릴 수 있지만 조금씩 자라나야 정상적인 아이인데 몇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당에 이처럼 몇년동안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또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듣고 아는 것에 대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그 고백을 책임질 수 있는 순종함의 행위가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살고자 고민하고 번민하고 애쓰고 그럼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아래 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놀고 또 그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면서 온전한 신앙 생활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아죠. 그 분의 뜻과 마음을 알기 위해선 말씀을 읽어야죠. 그리고 연약한 우리가 혼자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 못하니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죠.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또 기도를 통해 도움심을 구하였으면 세상의 문을 열고 나가서 주위를 돌아보아 도움이 필요한 한 곳에 도움을 아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죠. 근데 우리는 교회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할 사람도 못 만나고 돌아봐줘야 하는 사람도 못 만나고 세상의 흐름에 대해 모르며 자신은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나가기위해 일부러 만날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가고 또 쉬고 싶지만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근데 우리는 대부분 교회당을 떠나면 집으로 옵니다. 대부분 일주일의 삶을 살펴보면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집으로, 그리고 그 중 소수의 성도는 주 중 수요 예배나 성경공부나 통독이나 기도회 다녀오고 , 토요일 새벽기도 갔다오고 또 오이코스 참석하고 그리고 대부분 일요일 예배 참석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 전하는 일이며 자비를 베푸는 일을 하겠느냐 말입니다. 물론 열심히 신앙 생활을 잘 하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앙 생활이 이와같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안가시나요. 이 시계추의 신앙 생활…

 

여러분! 확실하게 천국을 가십니까? 혹시 위의 3번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니십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믿음으로만 천국에 갑니다.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위의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는 입술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죽으실 수 있나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입술의 시인때문에 죽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상상도 안해 보셨겠지만 만약 여러분 목에 칼을 드리대고 예수를 구세주요 하나님이라 시인하면 죽인다고 할때 과연 구원을 받는 입술의 고백을 하실 수 있나요. 이 것이 바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저 인도자의 말을 따라하거나 교회에서 그저 시인하는 ‘나 예수님 믿습니다’하는 것이 아니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가 사는 이곳은 예수님을 시인한다고 죽이거나 하진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려 놓을 수 있나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물질을 내려 놓고 또 시간을 내어 복음을 나누고 주위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을 나타내고. 또 열심히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만약 이러한 삶의 변화를 갖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입술의 고백이었다면 과연 3번의 인생이 되지 않을 수 있나요. 양과염소의 비유를 아십니까. 네가 주릴때, 목마를때, 헐 벗었을때, 갖혔을때 나에게 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자는 당연히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부탁 하신이에게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여 자신의 뜻과 이상에 맞지 않더라도 행하는 비 자율적 의지이지만 순종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부탁하신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기쁨을 드리고자 행하는 자율적인 의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의 여러 환경이 주님의 재림의 시간이 가까이 왔다고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 속에서 순종하는 믿음 생활로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매일의 삶이 진정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수 있을까 생각해 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소유자로 사는 저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그저 입술의 시인이 아닌 생명까지 드릴수 있는 입술의 고백으로 한 해를 살아갈 때 저희는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담대히 설 수 있는 믿음에 선 자들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그러한 고백의 삶을 살고자 할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이 이 한해 열심히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생활을 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누누히 말씀 드리지만 제가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삶이 되도록 각 자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다는 의미로 글을 드립니다.

 


휄로쉽 게시판

실명을 사용해야 하며, 광고나 적절하지 않는 내용의 글은 문의 없이 삭제 될수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594 렌트 하실 분 찾습니다. 583542 2019.04.08 90
1593 방 하나 렌트 구합니다 NCFC 2019.04.02 115
1592 이인애 권사님 소천 김일봉 2019.03.09 243
» 놀랄 세가지 사실 심 병환 2019.02.07 178
1590 이 한해 주의 영광을 보시길... 심 병환 2019.01.20 80
1589 한 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아보면... 심 병환 2019.01.14 108
1588 자마니카 조미선 선교사님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1 583105 2018.12.25 164
1587 알게 모르게 짓는 공범죄와 방조죄... 심 병환 2018.12.17 190
1586 7111... file 심 병환 2018.11.15 142
1585 Farmers Market - 워싱톤 밀알 선교단 - 11월 17일 토요일 9am - 5 pm file 김일봉 2018.11.11 187
1584 ‘너의 의미... 심 병환 2018.11.07 94
1583 주인공으로... 2 심 병환 2018.11.04 96
1582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을 사람을 소개 합니다... 1 file 심 병환 2018.10.29 210
1581 고상한 것을... 심 병환 2018.10.20 99
1580 Basement 렌트 하실분을 찾습니다. 조현구 2018.10.16 185
1579 이런사람 아시나요? file 심 병환 2018.10.06 286
1578 질문 563700 2018.10.03 195
1577 도전 심 병환 2018.09.24 138
1576 9월 9일 창립예배 한어/영어 합동예배 찬양입니다 NCFC 2018.08.31 206
1575 전도의 쌍두마차 심 병환 2018.08.24 18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0 Next
/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