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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합니다
은혜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합니다
은혜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은 후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고 또 어떻게 반응할 것을 특별히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우리 모두는 기대하지만 정작 결과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두려워 자유를 주지않고 사람을 구속합니다.
은혜 대신 반대로 율법을 주고 그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그런 죄인에게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뺏고 억압합니다. 그리고 엄격한 율법을 지키도록 뒤에서 조정(control) 합니다. 잘 지키면 가만있지만 잘못하면 못마땅 하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도록 분명한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가 어떤 때는 언어가 될 수도 있고 얼굴 표정이나 몸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무서운 침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신호들은 너의 행동이 내게 못마땅하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신호입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서도 이런 구속이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되고 혹시라도 야단을 맞거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조심하고 소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를 좋아합니다. 자기가 잘한 것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화를 내고 심통을 부리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씁니다.
이런 관계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조종(controlling)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늘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로를 구분합니다. 욕 먹지 않으려고 눈치보고, 인정 받으려고 눈치보고, 이같이 서로 눈치만 보게되니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정반대입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마음대로 하도록 자유를 줍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 자유를 잘못 사용해서 방종이나 배신으로 흐르는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무릅쓰고 은혜는 모험을 합니다. 이유는 은혜는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댓가를 기대하고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댓가를 기대했다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여도 또는 은혜를 배신하는 망령이나, 행실을 보여도 은혜를 베푼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은혜는 진정한 자유를 줍니다. 그래서 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진리를 알게되면 자유가 있습니다. 아들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지난 22주에 걸쳐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자유함을 배웠습니다. 진정한 순종이 무엇인지, 진정한 자유함이 무엇인지,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가서 그것을 실천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진정한 자유함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이 자유함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않고 나의 자유를 만끽하며 이웃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20년 전 바로 이 메세지를 위해 우리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왜 또 하나의 교회가 필요하냐고 곱지않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이웃에게 바로 이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자유함을 받은 종들의 모습이 그립다고.
우리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 성공하지 못한 부분들은 앞으로 성공하길 원합니다. 금식하시느라 수고들 하셨습니다.
2010년 9월 5일
김원기 목사
W. Jamie Kim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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